취재 중 한 온라인 카페를 방문했다가 상위에 붙박이로 게재된 글을 보고 당혹스러웠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좋은 교육 등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과 가족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애쓰는 게 무슨 별일이냐 만은, 하수처리장 같은 환경시설에 대한 거부와는 다르게 사람과 사람을 가르고, 사회구성원의 손가락질에도 부끄럽지 않다고 하는 자세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사회는 다양한 이해집단으로 차 있고, 이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툰다. 그런데도 사회가 무너지지 않는 것은 단순히 경찰력으로 대표되는 공권력 때문만은 아니다.
국제정치학의 현실주의 이론에 기여한 라인홀드 니버는 자신의 저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Niebuhr, Reinhold (2nd ed) 이한우 옮김, 문예출판사, 1998)에서 "사회는 영구적인 전쟁상태에 처해 있어… 강제성 없이 국가를 보존하기란 더욱 불가능하다"고 하면서도 "어떠한 국가도 순전히 강제성에 의해서만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p.22~37)는 점도 인정하고 있다.
니버가 말한 통일성을 유지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나. 기자는 공교육과 언론이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공교육은 사회 유지를 위한 가치를 충실히 전달해야 한다. 역사, 문화, 정치, 사회, 윤리가 그러한 매개체일 것이다. 언론 역시 그 사회의 가치를 형성하는 데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체벌을 과거와 달리 지양하는 것은 언론의 이슈선정과 그 반향의 결과일 것이다.
지금 '님비쓰레기일지언정 무조건 없는 사람, 복지 대상자가 내 가족과 함께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기심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지역사회가 부끄러워하기 보다 커밍아웃을 반기는 행태는 사회를 엮어내는 사슬 어딘가에서 잘못되고 있다는 뜻이다. 몸 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무겁다.
/권순정 지역사회부(안양·과천) 차장 s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