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눈을 감는 순간이 곧 '명상'
사랑·의미라는 세계 보이기 시작
'시간 어떻게 보낼까' 두려워 말고
눈부터 감으면 지혜 발견할수 있어
물론 격리생활은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슬기롭게 이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천주교 수도회 전통에는 일부러 독수 생활을 하는 수도자들이 있습니다. 불교 스님들도 1년에 두 차례 여름과 겨울에 한 달 정도 독거 수행을 합니다. 수도자가 아니더라도 재속 신부로 있는 저도 1년에 2주일은 독수 피정의 시간을 의무적으로 가져야 합니다. 종교인들은 왜 이런 홀로 침묵하는 시간을 일부러 가질까요?
사람은 가끔 홀로 침묵 중에 자신 만을 바로 보는 고독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이유는 삶의 맛을 더 맛나게 즐기기 위해서입니다. 현대인들은 그 전 시대에 비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또 따로 혼자의 시간을 갖는 일이 무슨 이유가 있을까 싶지만 독거한다고 모두 혼자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혼자 보고서를 써도 상대와 교신하고 있는 것이고 게임을 해도 영화를 즐겨도 거기에 나는 없습니다. 고독의 시간이라는 것은 상대 없이 오로지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입니다.
30대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에게 누구나 욕망이 있고 조건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내가 욕망껏 사는 것이 무슨 죄입니까?" 이 친구는 말려도 그렇게 살 친구이기 때문에 저는 한 번 지칠 때까지 욕망껏 살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욕망에 비해 우리의 조건이 대부분 비루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도 그는 여유가 되는 대로 욕망껏 살았습니다. 집은 월세여도 좋은 차를 사고 미모의 여자 마음을 사기 위해 돈도 많이 썼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돈이 다 떨어지기 전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요즘 마음이 너무 허합니다. 좋은 차로 허세 부리는 것도 맛이 안 나고 미모의 여자들을 만나도 설렘이 없네요." 요즘 얘기로 현타가 온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욕망으로만 살지 못합니다. 우리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 안에는 감성의 세계인 오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성도 있고 영성도 있습니다. 이성의 세계인 지식욕이나 판별력을 통한 결과의 만족과 같은 욕구도 채워져야 하고 영성의 세계인 신과의 교류나 현세를 초월하는 세상과 교감하는 욕구도 채워져야 비로소 사는 맛을 제대로 느끼게 됩니다.
청년의 현타는 여기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서 끌어 오르는 욕망을 오감의 만족만으로 채워 보려고 한 미련한 생각과 행동이 낳은 결과입니다. 자기를 자기 스스로 돌아보는 고독은 바로 이성은 물론 자기의 영성까지도 돌아보는 작업입니다. 인류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들은 물론이고 자기 인생을 만족도 있게 살아낸 사람들은 모두 일정 시간 자기를 돌아보는 고독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고독의 시간을 대단한 작업으로 생각하고 겁을 먹을 일이 아닙니다. 그저 나 이외에 어떤 사람들하고도 교류를 끊고 스스로 눈을 감기만 하면 시작되는 것입니다. 거창하게 명상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이 순간이 바로 명상입니다. 자기 안으로 들어가면 서서히 다양한 자신의 욕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사랑이라는 세계도 보이고 의미라는 세계도 보입니다.
격리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권유하고 싶습니다. 시간을 어떻게 때울까 전전긍긍하며 폰만 주무르지 말고 우선 눈부터 한 번 감아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고독의 시간을 통해서 슬기로운 격리생활을 할 수 있는 지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