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루스벨트는 대공황 이용 3선에 성공 인물
한국정치도 관용·자제 규범 사라진 격투판
野 반대일변·권력집단 法잣대만… 지양을

또한 그는 1936년 재선에 성공한 후 보수적인 연방대법원을 제어하기 위하여 대법원 판사의 수를 늘리려고 했다. 정권에 우호적인 판사를 대법원에 심겠다는 심산이었다. 물론 헌법에서는 대법관의 수를 규정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루스벨트의 생각은 당시의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과는 배치되는 것이었다. 결국 야당인 공화당은 물론 언론과 지식인, 집권당인 민주당의 많은 인사들까지 반대하는 바람에 그의 생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가 대공황의 중대한 국가위기 상황임에도 미국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상호보완의 관계지만 갈등적 관계일 때도 무수히 많다. 국회에서 의결된 탄핵소추가 비선출 권력인 헌법재판소에 의해 기각되는 것도 민주주의와 헌정주의와의 대립이란 관점에서 논쟁의 대상이다. 물론 헌법과 법률이란 테두리 내에서 합법이다.
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중요한 규범이다. 관용과 자제의 규범이 사라진 정치판에는 경쟁자는 존재하지 않고 어떤 수단과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반드시 꺾어야 하는 적(敵)만이 존재할 뿐이다. 위법은 아니지만 제도적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서 영원히 퇴출시키겠다는 적개심이 정치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태도는 극단적 분열과 대립을 가져오고 정치는 배타적 승부만 난무하는 격투로 변한다. 외국의 예가 아닌 바로 한국 정치의 모습이다. 민주화 이후에 여전히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인 까닭이다. 야당은 진영에 상관없이 집권세력을 감시하는 견제견이 아닌 투쟁으로 일관하는 투견이 된다. 여당은 권력을 감시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감시견이 아닌 순종적인 애완견으로 전락한다. 이는 쟁점적 사안을 일단 고발부터 하고 보는 극한적인 정치의 사법화와 무관하지 않다. 정치가 사법화된다면 사법 또한 정치화될 수밖에 없다.
지금 목도하고 있는 전형적 모습들이다. 사법개혁을 외치지만 검찰과 법원은 종종 정쟁에 휘말린다. 사법농단이 그것이고 최근 대법원장의 거짓도 마찬가지다. 인사청문회를 거친 고위공직자 후보자가 야당의 동의 없이 임명되는 숱한 사례들은 대통령의 권한이 자제의 덕목을 발휘하지 않는 좋은 예다. 인사권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지만 야당 동의 여부가 인사권 행사에 아무런 견제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인사청문회 제도는 폐지해야 마땅하다. 물론 인사권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므로 헌법과 법률이라는 제도적 테두리 내에서 아무런 하자가 없다.
검찰 인사는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므로 청와대 민정수석이 배제되어도 법률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 오히려 민정수석의 행위를 항명으로 몰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축적된 관행이 척결해야 할 대상이 아니고, 왜곡되고 뒤틀린 적폐가 아니라면 규범은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규범이 무시된다면 민주주의는 오로지 성문화된 법률만으로 지탱되어야 하며 그 결과는 극한 대립과 분열이다. 권력을 향유하는 집단이 이를 무시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새삼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권력은 최대한 자제되어야 하고, 권한은 신중하게 행사되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요체인 자제의 규범은 사라지게 된다.
자제가 사라지고 나면 다수결이라는 제도적 장치에 의해 소수의 의견은 무시될 수밖에 없고 합의제 민주주의 역시 설 땅을 잃게 된다. 야당의 반대 일변도의 정치행태, 권력을 가진 집단이 법률의 잣대만을 가지고 권한을 휘두르며 강성 지지자를 의식하는 정치행태는 모두 지양되어야 한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