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형 선생은 러시아와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다. 상해임시정부를 후원한 것은 물론이고, 1908년 독립운동단체인 동의회를 설립하고 산하에 연추 의병을 창설해 일본군과 무장투쟁을 벌였다. 연추 의병의 참모중장이 바로 안중근. 최 선생은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직접 지원했다. 대동공보를 인수해 항일 언론 투쟁을 벌였고, 연해주 한인마을엔 학교를 세웠다. 상해임시정부 재무총장과 블라디보스토크 대한국민의회 외교부장이기도 했다. 1920년 일제는 연해주 토벌 작전을 벌여 최 선생을 즉결 처형했다.
최 선생 순국 이후 유족들의 행적은 처참했다. 최 선생은 4남 7녀를 두었는데 소련의 고려인 강제 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 일대에 뿔뿔이 흩어졌고, 피의 숙청이 난무했던 스탈린 시대에 희생당한 자식들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지 않았는지 장손의 혈통만은 끊기지 않았다. 최 선생의 장남 초이 표트르(최운학)는 최 선생보다 먼저 사망했지만 초이 인노겐티를 남겼고, 그의 아들 초이 세르게이는 또 초이 일리야 세르게예비치(19)를 남겼다.
초이 일리야는 현재 인천대학교에서 유학 중이다. 인천대가 순국선열의 후손에게 조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주자는 뜻을 밝혀 성사된 유학이다. (사)최재형기념사업회가 일리야의 국내 후원을 대리했다. 그런데 일리야가 지난 설 연휴에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다. 신장 기능이 약해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데 의료보험이 안돼 수술비 걱정이 컸던 모양이다. 이런 걱정이 경인일보 보도(2월17일자 6면 '의료보험 혜택 못받는 독립운동가 후손')로 알려지자 바로 해결됐다. 수술비 전액을 인천시와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이 분담하기로 했다. 덩달아 일리야와 기념사업회에 대한 후원 문의도 쇄도하고 있다니 흐뭇하다.
광복회는 지난해 12월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에 이어 지난 1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게 '최재형상'을 수여하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 기념사업회가 버젓이 운영 중인 최재형상을 광복회가 가로채 여권 인사에게 수시로 남발한다는 비판이었다. 일리야를 포함한 전 세계 최 선생의 유족들은 기념사업회의 '최재형상'을 지지했다고 한다.
일리야로서는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인 고조 할아버지가 이런 논쟁에 휘말리는 것이 어리둥절했을 터이다. 그래도 할아버지 최재형을 기리는 조국의 민심이 자신을 든든히 받쳐주고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