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면 위로 떠오른 해돋이의 감흥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겨본다. 시원한 공기를 가슴 깊이 마시며 걷다가 다시 해를 바라보니, 송이처럼 생긴 등대 위에 올라있다. 흡사 내 한 몸 불사르며 밝은 빛이 되리라 하는 촛불로 오버랩 된다. 다시금 걷는 해변 길. 이제는 몽돌이 모래를 대신하여 해안선을 이루며 필자를 맞이한다. 파도가 계란 몽돌과 하얗게 거품 물 듯 부딪치며 하모니를 이룬다. '추르륵 추르륵 촤악촤악' 도돌이표로 반복되며 구성되는 소리에 마음이 씻겨 내리듯 시원스럽게 정화된다. 몽돌을 보니 시계를 뒤로 돌려 어릴 적 계란장수 아저씨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계란이 왔어요. 계란이 왔어요. 아주 큰~ 계란이 왔어요. 공룡 알인 줄 알고 깜짝 놀랐어요." 큰~이라고 외친 다음에 '공룡 알'과 '깜짝'에 하이톤을 넣으며 계란을 파는 아저씨의 멘트가 어린 마음에 왜 그렇게 웃겼는지, 배꼽을 잡고 웃은 기억이 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바닷가를 산책한다는 것은 기분전환에 특별한 효력을 발휘한다. 아주 아주 좋은 길, 너무너무 아름다운 길이기에 상념을 털어버리고 대자연에 심취해 걷기에 그만이다. 바다와 해안가를 주연과 조연으로 하고 산책길은 관람석이 된다. 자칫 해돋이 광경은 덤이 될 수도 있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을 텐데.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가 주위를 맴돌더니 다른 곳으로 날아간다. 과자봉지가 없어서 그런 건지, 새들도 작금의 사람들처럼 사회적 거리를 두는 건지.
자연경관에 심취해 걷다 보니 후진항이다. 주인장이 내어주는 은은한 커피 한잔, 커피 향을 깊게 들이마시며 바다로 시선을 돌린다. 필자처럼 갑갑함을 풀러 나온 사람, 연인들. 다시 눈에 들어오는 바닷가. 바다를 벗 삼아 해변을 산책하고 나니 꼬르륵하며 배꼽시계가 시장기를 알려온다. 머리는 허기진 배를 채워줄 메뉴를 검색하는데, 답은 빠르게 나온다. 칼칼하고 구수한 그리고 걸쭉한 장칼국수가 떠오르니, 벌써 입에는 침이 고인다.
김가루, 계란, 감자, 애호박, 시금치 등을 식당에 따라 차이 나게 부재료로 사용한다. 그렇지만 된장과 고추장으로 뜨끈, 칼칼, 걸쭉한 맛의 장칼국수는 공통적이다. 이곳 양양의 향토음식이 장칼국수다. 땀을 내며 한 그릇 뚝딱 했다. 그리고 약간 남아있는 허기짐은 주인장이 내놓은 공깃밥으로 든든하게 마무리했다. 어릴 적부터 먹어왔던 장칼국수는 뽀빠이의 시금치처럼 나에겐 힘의 원천이다. 장칼국수가 내 몸에 하나 되어 흡수되니 지난 시간 빠져나갔던 에너지가 다시금 내 몸에 들어온다. 배터리가 다된 줄 알았던 내 몸에 충전되는 기운은 필자를 맡은 바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세상의 일원으로 내어준다.
일터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차에 오른다. 가는 길 창밖을 보며 스스로를 담금질해본다. 마음먹고 일을 해나가는 건 유통기간이 짧다지만, 적어도 내 사전에는 없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누구를 만날 것인가? 어떻게 A~Z까지 순서를 정해 풀어나갈 것인가? 보람차게 일 할 내일이 기다려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박근철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