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801001009000049291
이강동 독자(인천시 중구)
부르기 부드럽고 예쁜 이름 작약도란 지명이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로 200여년 전 작성된 지도에 명기되어 있는 거친 이름 물치도로 바뀌었다. 만석동 지명도 일제의 잔재로 몰렸다. 인천시 동구 만석동 주민들은 지금까지 지역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신들이 생활하는 지역의 지명이 일본인들이 지은 지명이라는 소식에 놀라워했다.

사실 만석과 작약 명칭은 인천역사를 넘어 고조선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사시대 석기인들의 생활지였던 만석동 지역은 흑운모 바윗돌 지대로 형성된 곳이다. 석기인들의 무기인 돌도끼가 발굴되었던 곳으로 생활도구와 무기류, 주거할 수 있는 동굴들을 조성할 수 있는 다듬기 쉬운 연질의 흑운모 바윗돌 지대다. 지석묘로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큰 바윗돌들이 만석동에서 월미도로 이어지는 해안가에 수두룩했다. 바윗돌더미가 많다는 의미의 '만석'은 고조선시대부터 있었다. 고조선시대 여성들이 기원하는 적석단, 누석단이란 바윗돌 제단이 있었다. 그 시절 큰 바윗돌에는 영검한 기운이 있다고 믿었다. 영검한 기운이 있는 바윗돌에 기원하는 것을 만석(만돌)신앙이라고 한다. 중국과 일본에는 없는 우리만의 계조직으로, 신라 때부터 있었던 궁궐 계조직 만석계가 있었다. 우리의 전통 농기구에도 만석이라는 것이 있었다. 효성 지극했던 정조 임금이 수원화성을 축조하면서 화성 주변 동서남북으로 저수지를 조성했는데 그 중 한 곳이 만석거(북지)다. 수원시에서는 매년 이곳에 조성된 만석공원에서 축제를 연다.

중국의 옛 문헌에 모란꽃 고향은 '서역'이고 작약꽃 고향은 '동이'라고 했다. 동이는 중국 주나라와 대치하고 있던, 드넓은 만주 대륙을 차지했던 우리의 고조선 지역이다. 시경에 나오는 우리 나라꽃 무궁화와 같이 작약꽃도 우리 고유의 꽃이다. 모란꽃이 '꽃 중의 왕'이라면 작약은 '꽃 중의 정승'이라고 했다. 작약도의 역사성은 여러 곳에서 밝히고 있다. 우리 역사와 같이해 온 인천동구 관할 만석동과 작약도의 순수한 지명이 일제의 잔재라는 섣부른 판정은 역사와 사실을 왜곡한 일이다.

/이강동 독자(인천시 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