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이 각박할수록 작은 성냥불 같은 선행이 온 세상을 따뜻하게 데운다. 20년 넘게 연말이면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 인근에 거액의 이웃돕기 성금을 놓고 가는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은 이제 전설이 됐다. 몇 해 전 양심 없는 도둑 2명이 전주 키다리 아저씨의 성금을 훔쳐간 사건이 발생했지만, 선행의 훈기만은 훔칠 수 없었다.
최근 온라인을 통해 알려진 선행이 화제다. 선행은 작았지만 감동은 묵직하다. 하남시의 한 소녀는 편의점에서 만난 소년이 잔액이 부족해 물건값을 치르지 못하자, 대신 결제해 준 것은 물론 매주 토요일 만나 먹고 싶은 것을 사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소년의 어머니가 너무 고마워 페이스북에 사연을 올렸다. 남편과 사별한 뒤 외벌이로 소년을 어렵게 키우던 어머니는 소녀의 성의를 갚겠노라 사연을 알렸다.
소녀가 용기를 내어 답했다. "혹시 어머님이나 아가나 제가 하는 행동이 동정심으로 느껴져서 상처가 될까 봐 걱정을 많이 했어요." 낯선 이의 호의를 받은 상대의 감정까지 배려하는 성숙한 인격이 더욱 감동적이다. "하남에서는 어머님과 아들분들이 상처받는 일이 없으시길 바란다"는 말에는 공동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스며있다. 나이도 학년도 모르는 어린 소녀에게 제대로 한 수 배운 기분이다.
1년 전 선행이 알려져 홍역을 치른 홍대 치킨집 사장의 사연도 훈훈하다. 돈이 부족한 형제들에게 공짜 치킨을 대접한 사연을 고등학생 형이 프랜차이즈 본사에 편지로 알려 세상에 드러났다. 형제들과 대화도 나누고 어린 동생이 찾아올 때마다 치킨을 대접하고 머리도 깎아주었단다. 이 사연이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쇄도한 주문을 소화하지 못해 임시 휴업을 단행했다고 한다. 형제들 대신 보통 사람들이 치킨집 사장을 돈으로 혼쭐을 내주었다니, 그래도 살만한 세상 아닌가.
하남 편의점 소녀나 홍대 치킨집 사장이나 언론 매체의 인터뷰 요청을 한사코 거절했다고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은 선행으로 세상에 알려지는 일이 민망했을 법하고, 자신들을 시끄럽게 칭찬하는 사회가 이상할 수도 있겠다. 세상에 작은 선행을 선물하는 편의점 소녀들과 치킨집 사장들이 넘쳐난다면, 세상이 바뀔 수도 있겠다.
전주 키다리 아저씨를 본받아 전국에서 키다리 아저씨가 속출했었다. 선행 팬데믹이 코로나만큼 강력하길 바란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