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사업비 삭감·권한행사 태도 버려야
유찰땐 3개월 기간·행정절차 많은시간 낭비
공공건설 상생협력 사회적 관심 높아진 만큼
갑의 자세에서 탈피 수요자 입장서 바라봐야


200820 사진(최태안 인천경제청 영종청라사업본부장)
최태안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영종청라사업본부장
그동안 설계시공 일괄입찰방식(일명 턴키)은 건설사들의 참여가 많아 유찰이 되지 않고 건설사가 설계부터 시공까지 책임을 진다는 점과 불가항력적인 사유 외에는 공사비 증액이 없는 장점이 있어 많이 추진돼왔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최근 턴키계약의 유찰이 늘어나고 있다. 인천시의 제3연륙교 2공구(3천520억원)와 지하철 7호선 청라연장선(6천500억원)이 작년 건설사의 불참으로 유찰됐고 서울 지하철 9호선 1·3단계 사업(2천820억원), 영동대로 지하공간 2공구(2천409억원), 부산의 엄궁대교 건설사업(2천900억원), 전남 장산~자라간 연도교(1천321억원)도 최근 유찰됐다.

2018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공공부문 턴키사업 141건 중 63건(44%)이 유찰되었다. 이제는 건설업체도 예전처럼 무조건 입찰에 참여하지 않고 사전에 수익성과 리스크를 철저하게 분석해 손해가 나거나 이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과감히 입찰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준공 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발주기관이라면 이제는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고 그동안의 무리한 사업비 삭감이나 과거처럼 발주기관의 권한행사 태도를 버리고, 보다 적극적이고 유연하며 입찰참여자의 목소리나 불편을 듣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시민에게 약속한 사업이 한번 유찰되면 최소 3개월의 기간이 낭비되고, 또한 유찰원인인 사업비 증액이 필요하다면 총사업비 증액 등의 행정절차로 더 많은 시간이 낭비되기 때문이다.

제3연륙교 사업의 경우 3개 공구로 분할하여 추진 중인데 지난해 12월 우선 시공분인 3공구를 착공하며 착공식을 개최했으나, 본 공사인 2공구 유찰로 1공구마저 추진이 보류되면서 이대로라면 공사 지연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시민과 약속한 2025년 개통을 위해 우리 시는 관행이던 발주기관의 자세를 버리고 수요자의 입장에서 업계 동향을 파악해 반영하고 직접 업체를 방문해 입찰을 요청하는 등의 전례 없는 적극적인 세일즈를 수행했다.

대형 건설사, 지역 건설사와 지속적인 협의와 간담회를 통해 애로사항과 의견을 청취하고 시공사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 조달청을 수차례 찾아가 설득하여 업체 요구사항인 입찰 참가자격을 확대해 국내 5개사에서 10개사로 문호를 넓히는 데 성공했다. 또한 총점 차등을 5%에서 7%로 조정, 기존에 포기했던 업체들의 입찰 참여를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유찰로 인한 일정을 만회하고자 업체·조달청과의 소통을 통해 공기단축 배점을 강화하여 시민들과 약속한 2025년 준공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전까지 만연했던 갑의 자세에서 벗어나 건설사의 관점에서 요구되는 사항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적극적인 행정을 구현한 결실이다.

서울시에서도 발주기관의 적극행정 사례를 관찰할 수 있다. 지하철 9호선 4단계 사업의 경우 조달청과 협의하여 발주시기를 조정했는데, 이는 유찰 없이 착공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1조원 규모의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 건설공사 시기와 겹치는 것을 고려하는 등 건설업계 입찰 동향을 파악하여 발주시기를 조정해 건설사의 참여율을 제고했다.

최근 우리 시와 서울시의 이러한 노력 때문인지 건설업계에선 "발주기관이 세일즈맨으로 변했다"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오랜 시간 건설업계에서의 발주기관은 갑의 위치와 자세로 공사 발주, 현장 감독 등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관행인데, 이들이 세일즈맨이 되었다는 소식은 생소하면서도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발주기관도 적극적인 자세로 건설사업 계약에 임해야 한다. 과거와는 달리 건설사는 손해 발생이 예상되면 아예 입찰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공공건설 상생협력을 위한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발주기관에서도 갑의 자세에서 벗어나 수요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적극적 자세를 취해야 한다. 이러한 시대 흐름을 따라가며 수요자의 입장을 고려하여 발주기관과 건설업계가 상호 간의 협력을 이어간다면 건설업 또한 활력을 띠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최태안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영종청라사업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