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여년 전 정치부 기자로 국회 출입을 했을 때 선배들에게 전수받은 정치인 판별법은 두고두고 취재의 방향타가 됐다. '항성론'이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항성과 같은 정치가를 주목하고 발굴하라는 지침이었다.
이 기준으로 보면 1988년 당시 야당엔 두 개의 항성이 각축을 벌였다. 김영삼(YS) 통일민주당 총재와 김대중(DJ) 평화민주당 총재였다. 후보 단일화 실패로 노태우 정권 탄생에 일조했지만, 민주화의 상징적 존재감은 여전했다. YS의 상도동과 DJ의 동교동 자택은 장·노년층 민주화 동지들과 청년층 정치지망생들과 그 숫자만큼의 기자들로 붐볐다. 이 많은 식객들이 아침을 함께 하며 정국의 풍향을 가늠하느라 소란스러웠던 상도동, 동교동의 조찬 풍경은 장관이었다.
YS와 DJ가 차례로 집권하자, 그들의 주변을 공전하던 정치인들의 명암도 갈렸다. 두 항성의 후광을 많이 받은 순서대로 누구는 행성이 되고 누구는 위성이 됐으며, 또 누군가는 암흑 속에 사라지기도 했다. 발광체와의 거리가 반사체의 운명을 결정한다.
YS와 DJ처럼 스스로 항성을 자처한 정치인들이 많았다. 이회창의 빛을 가렸던 이인제는 마지막 고비에서 신성 노무현의 발광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항성이 쇠락하면 반사체인 행성과 위성도 사멸한다. 노무현이란 큰 별이 지자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작은 별이 반짝 빛나다 갔다. 대선 때마다 잠깐 반짝이다 유성처럼 사라진 인물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두고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언급한 '별의 순간'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정권과 대립하던 그의 차기 대권후보 지지율이 30% 넘게 치솟자 김 위원장은 "별의 순간이 보일 것"이라며 '별이 될지 말지는 본인에게 달렸다'고 충고했다.
내년 3월 20대 대통령 선거로 새로운 별(항성)이 뜬다. 별이 빛을 내는 건 핵융합 반응으로 에너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국민의 별이 되려면 민심을 융합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대표에게는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융합로가 장점이자 한계다. 윤석열에게는 당이라는 융합로가 없어 단점이자 장점이다. 시대정신과 민심이 융합해 탄생시킬 별은 누구일까. 정작 진짜 별은 숨어있는 건 아닌가. 별의 순간에 탑승하려는 행성과 위성 같은 자들로 소란스럽다. 차기 대권을 탄생시킬 빅뱅이 시작됐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