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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멀다

입술을 오므려/내 안의 너를 연주할 때

어느 미라의 눈꺼풀에 내려앉는 휘파람 같은 //

꽃 그림자는 붉지도 노랗지도 않아서

오래 잊고 있던 너였거나 너의 숨길이었거나

지금은 색을 버린 살/희미한 기억 한 줌

검은 숨을 쉬고 있다/검은 시간을 흐르고 있다 //

꽃이 벗어 놓은 꽃/돌아가서 잠든/꽃의 미라

색이 다하여 까맣게 타버린/너는 잠자는 꽃이라 했지만

저것은 어두운 태중의 아이/후 불어도 움직이지 않는

손으로 만져도 만져지지 않는 //

꽃은 멀다 //

색색을 주장하지 않고/이름도 표정도 없이 바닥에 엎드려 피는

머나먼 당신

홍일표(1958~)


권성훈교수교체사진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아직 태어나기 전의 것을 미생이라고 한다. 미생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상태다. 이것은 예측할 수 없기에 무한한 가능성을 담고 있는 것으로 존재한다. 모래알처럼 작은 꽃씨가 그 형태와 빛깔을 숨기고 있는 것 같이. 이 꽃씨는 수명을 다한 꽃으로부터 오는 것이니. '꽃의 미라'라고 할 수 있다. 꽃의 미라에 생명을 주입하기 위해서는 '미라의 눈꺼풀에 내려앉는 휘파람 같은' 봄 햇살과 바람이 잠든 그를 깨울 수 있을 것. 그전까지 '꽃 그림자는 붉지도 노랗지도 않아서' 그렇게 '색을 버린 살로 검은 숨을 쉬고 검은 시간'을 흐르고 있을 뿐이다. '꽃이 벗어 놓은 꽃'이며 '잠자는 꽃'으로 '어두운 태중의 아이'가 꽃의 미라다. 그러므로 손으로 만져도 그 꽃이 만져지지 않는 그런 꽃은 멀다. 마치 이름도 표정도 없이 시들어 '머나먼 당신'이 되어 버린 '미라의 사랑'처럼. 그러나 머나먼 당신은 당신이 오기 전 본래 자리로 돌아간 것으로 색색의 씨앗을 품은 '꽃의 본적'과 다르지 않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