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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프로복싱의 황금기는 1970~1980년대이다. 체급별 슈퍼스타가 즐비했고, 번개 머리 돈 킹 프로모터는 유명 선수를 능가하는 인지도와 유명세를 떨쳤다. 그가 성사시킨 무하마드 알리(1942~2016)와 조지 포먼(71) 타이틀매치는 복싱사를 바꾼 '세기의 대결'로 꼽힌다. 스타 선수는 천문학적 대전료를 받았고, 프로모터들은 돈방석에 앉았다.

1970년대는 헤비급의 시대였다. 알리와 포먼, 조 프레이저(1944~2011), 켄 노턴(1943~2013)의 먹이 사슬에 팬들이 열광했다. 노턴은 알리의 턱을 부쉈고, 프레이저는 알리를 굴복시켰다. 리턴매치에서 TKO 패한 프레이저는 왼쪽 눈을 실명했다. 포먼은 노턴과 프레이저를 아이 다루듯 일방적으로 두들겼다. 알리는 지능적인 경기 운영으로 포먼의 무쇠주먹을 무력화하며 8라운드 KO승을 거뒀다. 링 위에 누워버린 포먼과 이를 지켜보는 알리의 표정 컷은 복싱사에 길이 남을 순간이었다.

1980년대는 중량급 전성기였다. 마빈 헤글러(66)와 슈거 레이 레너드(55), 토마스 헌즈(53), 로베르트 두란(60) 등 4대 천왕이 링을 지배했다. 헌즈는 레너드에게 패했고, 두란은 헤글러에게 무릎을 꿇었다. 레너드는 헤글러에 판정승을 거뒀으나 전문가들과 언론은 판정이 잘못됐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헤글러는 리턴매치를 원했으나 성사되지 않았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전설로 불리는 '민머리' 헤글러가 지난 14일 사망했다. 부인 케이 G 헤글러는 '뉴햄프셔의 집에서 예기치 못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고인은 '길거리에서 싸우지 말라'는 어머니 가르침에 따라 복싱을 배웠다. 1983년 세계복싱평의회(WBC), 세계복싱협회(WBA), 국제복싱연맹(IBF) 미들급 3대 기구 통합챔피언에 올랐다. 왼손 돌주먹을 앞세운 파괴력으로 '링 위의 도살자'로 군림했다. 팬들은 경이롭다며 '마블러스(Marvelous) 마빈'으로 불렀고, 그는 '마블러스 마빈 헤글러'로 개명했다.

복싱 팬들조차 현 WBA, WBC 헤비급 챔피언을 알지 못한다. UFC 격투기에 밀려 시시한 동네 싸움으로 전락했다. 부와 명예는 과거일 뿐이다. 화려했던 영광은 흑백 사진 속으로 사라졌다. 헤글러는 4각 링의 초라한 몰락을 지켜봐야 했다. 복싱 전성기를 이끈 영웅을 잃었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