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여정이 별의 순간을 잡았다.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미국영화예술아카데미는 15일 미나리를 작품·감독·남우주연·여우조연·각본·음악상 등 6개 부문 후보로 발표했다. 지난해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어 아카데미 작품·감독·각본·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의 '기생충'은 한국 영화였다.
반면 미나리는 미국 영화다. 한국계 미국 배우와 한국 배우들이 한국어로 이민 국가 미국의 정체성을 그려냈다. 할리우드의 아메리카 퍼스트 문화를 두 해 연속 강타한 '한국의 기적'에 미국이 감탄한다. 그 중심에 윤여정이 있다. 70대 윤여정은 아카데미 수상 후보에 오른 최초의 한국 배우가 됐다.
윤여정은 TV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중에게 친숙하게 소비됐던 대중연예인이다. 본인 스스로 생계형 연예인을 자처할 만큼 작품과 배역을 가리지 않았다. 그의 아카데미상 후보 지명이, 마치 목욕탕에서 가끔 만난 동네 아재가 노벨 문학상 후보가 된 듯 낯설고 놀랍다.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 남긴 어록이 각별하다. "한국에서는 선생님 좋을 대로 연기하라고 해. 이런 환경에 있으면 난 괴물이 될 수도 있어요. 그게 매너리즘이지. 미국 가서 거기 애들한테 'what?'이라는 소리를 듣고, 여기서는 진짜 내가 'nobody'구나 생각하고, 연기를 잘해서 얘네들한테 보여주는 길밖에 없다고 결심하는 거. 그게 도전이죠." 영화 데뷔 50년 만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윤여정이야말로 '미나리'의 생명력을 닮았다.
영화 미나리는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작품에 익숙한 한국 관객에겐 너무 담백하다. 1980년대 병아리 감별사로 미국에 이민 간 한 가족의 삶에서 딱 한순간을 떼어내 보여준다. 부부가 골라낸 수평아리는 소각돼 검은 재로 흩어진다. 농장을 지켜내지 못하면 그들도 미국 사회에서 수평아리 신세가 될 수 있는, 이민 가정의 불안과 희망은 날 것 그대로다. 이민자들의 나라 미국이 공감한 대목이다.
영화에서 미나리는 미국 이민자들의 '불굴의 의지'를 은유한다. 하지만 엔딩 자막이 뜰 때쯤 땅은 미나리를 심을 사람들의 몫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인간적 서사를 상실한 채 탐욕의 투기장으로 변질한 우리 땅의 현실 탓이었나 싶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