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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형상 결합된 대표장식물 풍경
탁설은 물고기 모양이 주를 이룬다
염불에 방해안되며 맑고 명징하게
수행자들이 머무는 도량답게 소박
마음이 소란스러울때 들으면 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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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자 시인·여행가
딱히 불자가 아니어도 많은 이들이 사찰하면 스님이 불경을 읽을 때 두드리는 목탁소리 다음으로 법당 추녀 끝에서 딸랑딸랑 울리는 풍경소리를 떠올리고 연상한다. 더러는 풍경소리가 그리워 사찰에 가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나도 한때는 그랬으니까. 그러니까 사찰과 풍경은 분리될 수 없는 단어인지도 모른다.

풍경은 '소리'와 '형상'이 결합된 사찰 건물의 대표적인 장식물이라 할 수 있다. 가장 대중적인 디자인으로 범종 모양을 본떠 만든 풍경은 소리가 있으므로 고요를 의식하듯 조용한 사찰 분위기에 톡톡히 한 몫을 하고 있다. 종 안에 벽을 쳐 소리를 내는 장식물을 탁설(鐸舌)이라 하며 이는 물고기 모양이 주를 이루는데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듯이 수행자라면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근래 방문한 사찰들은 물고기 모양의 탁설이 주를 이룬 반면, 팔만대장경이 있는 합천 해인사는 산을 깎지 않고 건물을 돋워 새로 건축한 대적광전 앞마당에 자리를 잡은 석등과 그 뒤편으로 석탑에 달아 놓은 범종 모양의 풍경에는 탁설이 연꽃 모양을 하고 있었다. 추측하건대 아무래도 건물을 짓는 시기에 따라 풍경도 조금은 다른 형태를 가질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생각을 해인사를 둘러보면서 했던 것 같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사찰마다 풍경의 모양과 크기가 각기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부석사 풍경이 건물과 어울려 디자인 면에서 아름답고 소리도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얼마 전 해인사를 다시 방문해 풍경을 살피다 보니 오묘한 소리는 물론 그냥 단순한 사찰의 장식 소품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풍경이 너무 크게 울리면 염불에 방해가 될 것이고 그 소리가 없으면 사찰은 물속처럼 적막할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풍경소리는 자연에 도드라지지 않는 맑고 명징한 것이 좋다. 물론 그 소리는 바람이 정하는 거지만, 풍경의 크기에 따라 어떤 소리는 수선스럽고 어떤 소린 작아도 명징하다. 주지 스님의 취향일 수도 있겠으나 요즘 들어 어느 사찰은 아예 풍경이 없는 곳도 있다는 걸 알았다. 사찰은 수행자들이 머무는 도량이니까 조용해야 하지만 방문자를 의식한 것인지 스님들의 공부를 의식한 것인지 너무 조용해도 오히려 기도에 방해가 된다는 말을 스님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풍경소리는 아무리 호젓한 사찰이라도 방문자들이 북적이는 낮에는 제대로 된 풍경소리를 감상하기가 어렵다. 해가 기울고 사람들이 하나둘 산사를 떠나 사찰이 물속처럼 고요해지는 밤이면 그때 비로소 제대로 된 풍경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심야에 듣는 풍경소리는 그야말로 영혼을 두드리는 듯 청명하다. 청년시절, 산사에서 며칠 유숙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내가 들은 풍경소리는 얼마나 소름 돋게 맑고 아름다웠는지, 그 후 나는 그 풍경소리를 잊지 못해 비구니가 되는 꿈을 꾼 적도 있었으니.

조금 변형되긴 했으나 요즘은 가정집이나 가게 문에 풍경을 달아두는 경우를 흔하게 보는데 풍경은 고즈넉한 사찰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불자도 아니면서 어느 땐 마음에 불처럼 일어나는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 수백리를 달리다 보면 어느 사찰에 앉아 풍경소리를 듣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간혹 풍경소리를 공해라 말하는 사람이 있는 건 풍경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아서일 것이다. 종교와 상관없이 마음이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울 땐 풍경만한 위안도 없지 싶다. 고즈넉한 산사에서 홀로 듣는 풍경소리, 그것은 나처럼 단순하고 무지한 사람에게도 음악을 뛰어넘는 음악, 경문을 뛰어넘는 경문에 다름 아니었으니.

/김인자 시인·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