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재산 챙긴 유사 집단 많기에
LH 사태·취업 불공정 등에 '분노'
공정함·공공성 제자리 찾기위해선
담론·언론·정치·법 체제 만들어야
이런 논란과 민감함은 사실 해방 이후의 역사를 돌아보면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다. 과거 지대와 권력을 독점하던 부류가 얼마나 독단적으로 부를 축적해왔는지 돌아보면 이런 요구는 늦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곳곳에 이런 특권과 기득권 세력이 짬짬이로, 그들만의 정보와 권한으로 부당하게 이익을 가로채 온 경우가 너무도 많았다. 국회의원, 고위관료, 법조인, 언론인 등은 물론 심지어 자격증 하나라도 가지고 있으면 이를 이용해 자기 이익을 챙겨온 것이 우리 사회였다. 이제 집단사익의 부정한 축적을 막는 제도와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 촛불시위에 의해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성공하지 못했던 독점적 특권 집단의 불공정한 관행과 사익 추구를 막는 법과 제도, 그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촛불시위의 힘으로 집권한 이 정권이 지속적으로 그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기에 지금 이런 파국과 위기를 맞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여전히 이 불공정한 시스템을 개혁하는 데 소극적이다. 담대한 개혁에의 요구를 다만 정치공학적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지금은 정치공학이 아니라 새로운 규범과 원리에 대한 결단이 필요하다. 담대함은 그 위에서야 가능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원칙은 공동선(common good) 개념일 것이다. 자유주의(liberalism)는 서구에서는 물론, 우리 사회에서도 실패했다. 이 논의는 최근 미국에서도 꾸준히 제기되는 반성이다. 그에 비해 이른바 공동체주의 역시 대안적 담론으로 부족하다는 사실도 여실히 드러난다. 유럽 근대는 개인과 사회를 이원론적으로 구분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위해 보편적 규범을 포기했다. 그 결과가 이런 파국을 낳은 것이다.
사회와 개인은 이원론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한 개인은 철저히 실존적이지만 그만큼이나 사회적 존재다. 개인과 사회의 상호성에 기반하여 공동선의 이름으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규범과 원리를 정립해야 한다. 그를 위해 자유주의에 기반한 능력주의의 환상을 넘어 공동선주의를 위한 전환이 필요하다. 부당한 특권으로 불로소득과 지대를 독점하는 집단과 체제를 해체하자. 공공성과 공동선을 보지 못하는 체제는 반공동체적일 수밖에 없다. 자신이 지닌 자격증과 면허증이, 지위와 자본이 사실은 공동체의 집단적 노력과 협력 위에서야 가능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는 이들, 그들은 그 모두가 자신이 지닌 한줌의 능력으로 얻은 것으로 착각한다. 공동체적 기반 없이 어떻게 그러한 지대와 이익이 가능한가? 기업의 성공은 시민 없이는 불가능했다. 법조인과 고위 관료, 정치인의 엄청난 재산은 그 혼자 땀 흘려 얻은 것이 아니다. 그와 유사한 집단이 곳곳에 널려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LH 사태에, 입시부정과 취업 불공정에 분노하는 것이다.
그러나 작은 불공정과 미시적 이해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그럴 때 변화는 불가능하다. 공동체 내에서 공정함과 공공성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때 오히려 개인의 이익이 더 커진다. 그를 위한 담론과 시스템을, 그를 위한 언론과 정치, 법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를 막는 적은 영원히 퇴치해야 한다. 구린내가 난무하던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 않는가.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