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연스러운 소산으로 탄생
국가의 재산되고 권리·의무 짊어져
청년·장년·노인… 삶의 시간 '훌쩍'
어느쪽이 되든 '죽고 사는 일' 없는
평화롭고 헛웃음 짓는 세상됐으면

2021032901001204000060751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드디어 봄이 온 것 같다. 오는 것 같기만 하고 꽃샘추위에 날씨가 한참 흐리고 짓궂더니 이제야 뼈에 스며드는 한기도 가시고 산에 들에 꽃 천지다.

진달래 하면 늘 생각하는 것은 저 북한산 진관사 계곡의 진달래꽃 사태다. 진달래꽃은 철쭉과 달리 무더기무더기 피면 제맛 아니건만 이상하게도 진관사 계곡 그늘에 늦게 오는 진달래꽃은 무리져 피어도 헐하지가 않다.

언제 피었지 싶게 봉천고개 오르는 언덕에 샛노란 개나리가 황사 공기 속에서도 새 생명다운 빛을 낸다. 나무에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달리는 개나리의 초록빛 없이 노란 꽃들을 보면 그렇게 흔하디흔하건만 천해 보이지 않음은 왜일까 생각하게 된다.

봄이라도 계절이 이제 막 바뀌어 천지의 기운이 달라 보이는 요맘때쯤 되면 사람은 역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존재로구나, 겨울이 아무리 좋아도 역시 봄이 좋아 사람들은 이렇듯 새 계절을 기다리는 것이려니 한다.

봄이 이렇게 온 천지에 다가와 사람들로 하여금 봄빛을 즐기라고, 생명이 새로 맞는 새 계절을 누리라고 할 때, 서울대입구역 사거리를 지나다 보니, 아하, 선거철이구나 싶게 하는 각 당의 운동원들 모습이 보인다.

어째서 이렇게 관심이 가지 않는 건지, 아침에도 무슨 무슨 후보들 지지율이며 동정 얘기가 인터넷 다음(daum) 뉴스 기사들 맨 윗단을 장식하고 있었건만, 들어가 볼 생각은 하지 않고 결말까지 알려주는 유튜브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클릭하고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단일화다, 뭐다 해서 꼭 시선이 안 갔던 것만은 아닌데 막상 다 결정되고 보니 이제 뭔가 새로운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정신을 가다듬고 이번 선거만은 선거다, 어느 당이다, 누가 맞다 하는 얘기에 정신 다 쏟지 말고 이 아름다운 봄이 왔다 가는 하루하루의 동정에 눈과 귀를 잘 기울여 보겠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세상에 날 때 이 세상에 가득한 옷이며 신발이며 어느 하나 가진 것 없이 벌거숭이로 나게 되니 이것을 가리켜 '자연' 인간이라 한다. 하지만 이 '자연' 인간은 오늘날에는 태어날 때부터 병원 신세를 지고 인공 의료 기계들의 도움을 빌리는가 하면 '나자마자' 국가에 신고하여 '국민' 인간으로 등록된다. 나오기는 엄마, 아빠의 사랑의 자연스러운 소산으로 아무 지닌 것도 없이 세상에 나오되 '나자마자' 국가의 재산이 되고 국가의 권리와 의무를 짊어진 '인공적' 존재로 전변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병역도 있고 선거도 있고 세금도 있고 코로나19 시절이라 살기 어렵다 해서 일인당 얼마씩 받는 혜택도 있게 되니, '국민' 인간이라는 숙명이 아예 저주받은 것만도 아니로되 하루도 이 '국민'임을 잊지 않고는 살 수 없을뿐더러 이 나라를 누가 이끌 것이냐, 누가 되어야 세상이 좋을 것이냐를 두고 하루하루 숨 가쁜 논의에 논쟁을 거듭하게 된다.

그런 사이에, 생각해 보면 십 년도 가고 이십 년도 훌쩍 가버린다. '자연' 인간의 모습은 청년에서 장년으로, 그리고 노인으로 변모해 가고, 돌이켜 보면 삶의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는 허무감에 사로잡히는 때가 많아진다. 그런데도 또다시 하루하루는 '국민' 인간의 스케줄을 따지고 여론과 승패에 일희일비하는 일들로 채워지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는 서울 시민은 시민이로되 '생애' 최초로 누가 되는지에 너무 골몰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어느 쪽이 되든 죽고 사는 일이야 일어나지 않으리라 기대하며 국민, 시민으로서 사는 것만큼이나 '나'라는 한 자연인이 '생로병사'의 낱낱의 과정을 이 봄에도 시시각각 겪어나간다는 자명한 사실을, 피부에 봄바람처럼 절감하여 지내보기로 한다.

그리고 세상도, 어느 쪽을 선택하고 어느 쪽이 선택되든 죽고 사는 일 없는 평화로운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으면 한다. 지나고 보면 그렇게 난리 칠 일도 아니었던 것이라고, 헛웃음 지을 수 있는 세상이 조금은 더 가까워져야 한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