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년간 가족같이 지낸 언니 '이사'
집 공사로 우리집에 1주일 머물러
매일밤 맥주 파티 할줄 알았지만
온라인 강의로 같이 시간 못 보내
딸에겐 '비밀'… 놀이동산 가기로

우리는 15년쯤 알고 지냈다. 그간의 시간 동안 일주일에 서너 번은 만났고 열 번쯤 비행기를 타고 같이 여행을 떠났으며 급기야 4년 전, 우리는 같은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했다. 바로 옆 동이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마주치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고 주말이면 멸치국수 끓여 같이 먹기도 했다. 퇴근길 언니는 전화를 걸어 "치킨 사 갈까?" 물었고 고향집에서 보내준 깍두기며 호박, 고구마 등속을 가져가라 전화도 했다. 깜박 잊고 보일러를 끄지 않고 출근한 날이면 나더러 좀 꺼달라 부탁했고 나는 청소기가 잘 안 돌아가거나 전등이 나가면 누구보다 H언니를 불렀다. 그게 제일 편했다.
다음 주면 언니가 이사를 한다. 살던 집은 빠졌는데 새로 이사 갈 집 인테리어 공사가 끝나지 않아 일주일의 텀이 생긴 거다. 그래서 일주일 치 짐을 들고 우리 집에 왔다. 이제 사흘 지났다. 오랜만에 한집에서 며칠 뭉개면 밤마다 맥주 파티를 벌이게 될 줄 알았지만 사실 그건 안 된다. 느지막이 언니가 퇴근하면 난 얼마 안 가 온라인 수업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오프라인 수업을 다 접고 온라인으로 바꾼 지 오래다. 사람들은 온라인 수업에 익숙해지자 다들 늦은 밤시간으로 바꾸어주길 원했다. 직장인 수강생들은 퇴근 후 저녁도 먹고 샤워도 끝낸 뒤 느긋하게 참여하고 싶어했고 가족이 있는 수강생들은 그들을 모두 제 방으로 들여보낸 뒤 조용히 하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그게 편했다. 그래서 수업은 밤 10시에 시작한다. 9시 무렵부터 준비하고 수업을 시작한 뒤 자정 넘어 끝내고 나와보면 언니는 이미 곯아떨어져 있었다. 사흘 내내 밤마다 수업이었다. "이게 뭐야? 도대체 수업 없는 날이 언제야?" 아침이면 언니가 골을 냈다. "그러게, 사는 게 왜 이렇게 빡세?" 나도 투덜거렸다. 그래도 오늘 밤엔 수업이 없다.
나는 한 가지 당부를 했다. "언니 이사한다는 거 당분간 비밀이야." 일곱 살 먹은 내 딸은 언니가 이사한다는 걸 알면 아마 울음보를 터뜨릴 거다. 멀리 사는 친이모들보다 훨씬 가깝고 친한 이모인데, 주말에 놀이터에서 놀다 보면 베란다에서 내다본 H언니가 호르르 뛰어 나와 와락 안아주며 실컷 놀아주는데. 그 이모가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는 걸 우리 집 꼬마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백종원이 아무리 맛있는 레시피를 유튜브에서 알려줘도 나는 언니가 없으면 시도도 못 하는데, 언니가 없으면 완두콩이며 녹두알을 누가 챙겨주냐고, 인터넷이 고장 나면 나는 어떡하냐고. 언니가 혀를 쯧쯧 찼다. "인터넷이 고장 나면 수리기사님을 부르면 되고, 완두콩이랑 녹두알은 이마트에 쌓였다!" 모르지는 않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걸. 언니는 금요일에 휴가를 냈다. 우리 집 꼬마를 데리고 에버랜드에 가기로 한 거다. "미세먼지랑 코로나… 음, 마스크 잘 쓰고 가자. 봄이라 꽃들 진짜 예쁠 거야. 눈 호강 하고 오자." 응, 고마워, 언니. 우리 집 꼬마 잘 가르쳐서 나중에 이모한테 효도하라고 할게. 언니가 일곱 살 아이의 허리를 부여안고 "너, 나중에 이모 늙으면 똥 닦아줘야 해!" 소리치지만 꺅꺅, 아이의 목소리가 더 크다. "이모! 이모는 왜 그렇게 지저분한 소리를 해! 똥이 뭐야, 똥이!"
/김서령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