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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본업인 경영뿐 아니라 인문학과 패션, 미식, 스포츠를 넘나드는 멀티 플레이어(Multi Player)다. 그가 SNS에 올린 음식점은 '정용진 식당'으로 불리며 특수를 누린다. 강원도 양양의 한 햄버거 하우스에 들러 '2시간을 기다려 먹었다'고 하자 줄이 더 길어졌다. 대기업 총수가 명품 정장이 아닌 청바지 차림이 떠오르는 소탈한 이미지로 친근하게 다가선다.

올 초, 프로야구단 SK 와이번스가 신세계그룹에 매각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깜짝 발표에 당혹스럽다던 팬들 반응은 이내 긍정론으로 반전됐다. 새 구단에 걱정보다는 기대가 크다는 반증이다. 농구·축구는 물론 비인기 종목인 컬링까지 화끈하게 지원한 정 부회장의 이력이 더해졌을 터이다.

인천의 새 연고팀 'SSG 랜더스'가 최근 서울지역 호텔에서 창단식을 했다. 구단주인 정 부회장은 가을 야구를 희망했고, 메이저리거 추신수 선수가 주목받았다. 새 출발을 알리는 축제의 장이었으나 팬들은 물론 시민들까지 실망이라고 한다. 첫 발걸음이 인천이 아닌 서울에서란 거부감에서다.

지역 시민단체는 '인천 패싱, 서울 창단식'을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단은 '뭐가 잘못이냐'고 해 기름을 부었다. 지역 호텔의 열악한 환경과 방송사들의 취재 편의를 들먹였다. 지역 차별에 홀대라는 비난을 받는다. 이럴 거면 인천 연고를 취소하고 서울로 옮기란다.

인천경실련과 인천상의 등 5개 단체는 지역신문에 광고를 내 '구단은 서울 창단식을 인천시민들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인천 연고 야구단이 다른 도시에 원정을 가서 창단식을 한 것이라 비난했다. 구단은 인천과 시민들을 우습게 봤고, 자존심에 큰 상처를 냈다는 거다.

지역 프랜차이즈인 프로야구단은 연고지 팬과의 끈끈한 유대와 강한 연결고리가 성패를 가른다. 1996년 인천에서 창단했다가 2000년 수원으로 연고를 바꾼 현대 유니콘스는 팬들의 철저한 외면 속에 2007년 쓸쓸히 퇴장했다. 수원시민들은 현대를 연고팀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유니콘스에 냉랭했다.

랜더스는 출발부터 헛발을 디뎠다. 지역 홀대란 꼬리표를 떼지 못하면 팬들의 외면을 받는 외로운 구단이 될 수 있다. 실망을 희망으로 바꿀 지역친화 마케팅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원정 창단에 대한 진정한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