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끝에 명태明太를 말린다/ 명태明太는 꽁꽁 얼었다/ 명태明太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중략)/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明太다(후략)" 시인 백석이 20대 시절 함경도에 머물면서 지은 '멧새 소리'라는 시다. 자신을 언 채로 말려지는 길고 파리한 명태로 단정한 청년 백석의 시적 감수성이야 해석이 분분할테지만, 명태의 원적지 함경도가 아니었다면 시의 정서는 반감됐을게다. 함경도 명천의 태(太)씨 어부가 잡았다 해서 명태 아닌가.
베링해~오오츠크해~동해의 한류에 의지하는 명태는 오랜 세월 백성의 물고기였다. 한겨울 뿐 아니라 늦봄까지 그물 가득 올라왔단다. 겨우내 동태로 실컷 먹고도 남아, 말려서 사시사철 먹는 북어(北魚)는 태자 돌림 별칭이 수십여개다. 한국전쟁 중에도 시인 양명문이 읊은대로 "에집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되어 시인의 시가 되고 안주가 됐다. "짝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라는 양명문의 '명태'는 국민 생선에 대한 예찬으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명태를 생태로 먹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냉장유통이 언감생심이던 시절에 바닷가 사람이나 누릴 호사였을테다. 지금이야 선어는 물론 활어마저 하룻밤 사이 전국으로 유통되는 시절이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바다 연안태는 2000년대 들어 씨가 말랐다. 일본산 생태도 동일본 원전사고 이후 수입이 끊겼다. 음식점에서 내놓은 명태는 모두 냉동 원양태이거나 수입태다. 생태는 없다.
사라진 생태가 서울시장 보궐선거판을 팔팔 끓였다.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제기한 내곡동 토지 특혜보상 의혹이 선거 막판 생태탕 논란으로 번졌다. 오 후보가 16년 전 문제의 토지 측량에 동행한 뒤 자신의 생태탕집에서 식사를 했다는 주인장 모자의 증언이 나오면서다. 오 후보는 부인하지만, 박 후보는 증언을 앞세워 거짓말로 단정했다. 특혜보상 진위 논란을 생태탕 식사 진위 공방이 덮었다.
민주당은 생태탕집 주인 모자를 의인이라며 경찰 보호를 요청하고,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생떼탕'을 끓인다며 흑색선전 중단을 요구했다. 생태탕 공방으로 공약과 의제가 실종된 '생태대첩(?)'이라니, 사라진 생태가 어리둥절할 일이다. 오늘 밤 생태대첩의 승자가 결정된다. 궁금하긴 하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