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재보험사 스위스리(Swiss Re)가 해마다 발표하는 시그마 보고서를 보면 세계 각국의 보험료 수준을 알 수 있다. 보고서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한국인은 1인당 연간 3천366달러, 약 371만원을 보험료로 지출했다고 한다. 생명보험료로 1천822달러, 손해보험료로 1천544달러다. 세계 19위 수준으로 한국 보험사들의 총 수입보험료는 1천745억 달러에 달한다. 2017년 14위였던 1인당 지출 순위도 떨어지고, 1천812억 달러인 총 수입보험료도 축소됐다.
보험업계와 전문가들은 포화 상태인 보험시장의 내리막길을 보여주는 통계라며 걱정한다. 그래서인가 보험사들은 손해율 줄이기에 악착같다.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분쟁이 그치지 않는 이유다. 최근 3년간 암보험 지급 관련 피해구제 신청 건수가 398건에 이른다는 경인일보 보도(4월8일자 7면)는, 갑상선암을 둘러싼 보험사와 가입자의 심각한 분쟁을 보여준다. 갑상선 전이암에 대한 보상을 거부하고 갑상선암에 대해서만 소액을 보상하는 보험사들의 횡포가 관련 중재기관에 의해 잇따라 철퇴를 맞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보험금을 지급할 때가 돼서야 약관을 들이대는 보험사들의 무책임한 가입자 모집 관행도 문제지만, 고의적으로 보험금을 노린 블랙 컨슈머들도 보험 생태계 전체를 복마전으로 만드는데 일조한다. 지난해 구급차와 고의 사고를 내 고령의 환자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았던 택시운전사는 47건의 교통사고에 연루돼 보험금만 1억2천만원을 챙긴 사실이 수사과정에서 밝혀져 결국 실형을 선고받았다. 병원마다 가벼운 교통사고에도 누워버린 나이롱 환자들이 넘쳐난다. 이로 인한 손해는 무사고 운전자들의 보험료에 전가된다.
제2의 건강보험이라는 실손보험은 국민 3천800만명이 가입했지만, 0.5%의 계약자가 지급 보험료의 60%를 받고 90% 이상의 가입자는 보험금을 청구하지도 않았다. 대다수 가입자들이 소수의 의료 쇼핑을 부조하면서 보험료 인상까지 부담할 판이다.
보험 가입자 대다수가 약관 횡포를 앞세운 보험사들의 이익과 비양심적인 가입자들의 보상금 독식의 희생양이 되는 보험생태계는 정의롭지 않다. 보험 적폐만 제대로 손봐도 보험료로 소득의 10% 넘게 지출하는 국민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