밉든 곱든 자연과 인간은 공생한다
서정시의 과제는 예언자적 저항과
자기성찰 강화…생태 사유·실천은
기후·환경위기 맞물려 중요성 커져
이제는 인류적 의제로 권역 넓혀야


2021041301000501300024211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그동안 생태학의 의제와 성과를 수용하거나 변형한 경우는 소설보다는 시쪽에서 훨씬 강렬하고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생태시학의 활발한 전개는 한결같이 근대주의가 가진 진보 이데올로기에 대한 근원적 회의와 맞물려 나타났다. 이는 근대적 가치의 완성을 위해 매진했던 진보 기획이 일정하게 과학주의로 편향되었고, 이성으로 도저히 포착할 수 없는 근원적 현상에 대해 무심했던 것도 중요한 반성적 거점이 되어주었다. 또한 이는 자연과 우주를 타자로 몰아붙였던 지난 시대의 역사 과잉에 대한 반성을 내포하는 것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 점에서 생태시학에는 근대의 자기 반성적 요소가 뚜렷하다. 하지만 그 이론적 작업은 아직도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고 남겨둔 계급, 젠더, 지역, 분쟁 등에 대한 인식을 생태적 사유와 결합해야 하는 과제들을 남겨놓고 있다. 물론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충격을 담아내는 근본적 쇄신을 전제하고서 말이다.

한동안 주류미학으로 등극하여 반성적 대상이 된 후에도 생태시학은 여전히 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장악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저항담론이자 대안담론의 가능성으로 충일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생태주의는 그 자체로 물신화하거나 무공해식품 같은 자본주의의 수사적 첨병 노릇을 할 개연성을 늘 가지고 있다. 또한 생태시학은 또 하나의 신비주의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한가롭게 숲을 거닐거나 유기농 작물들을 일용하는 녹색 중심주의의 소박한 담론을 뛰어넘어 진정한 대안적 사유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간 욕망에 의해 유린되고 상처받은 우주 혹은 자연에 대한 근원적 터닝을 감행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곧 황폐화된 물질문명과 완전히 격절할 수 있는 순수자연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과 연결되며 밉든 곱든 자연과 인간이 공생해야 한다는 종말론적 자각과도 연관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언적이며 동시에 성찰적인 장르일 수밖에 없는 서정시가 가질 수 있는 '코로나19'시대의 과제는 무엇일까. 이는 아마도 예언자적 저항과 자기 성찰을 강화해가는 것으로 모아질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최후의 윤리학이자 급진적 대안으로 대두한 생태적 사유는 자연을 신성한 것이 깃들인 유기적 생명체로 승인하면서, 그것을 인간 욕망 실현을 위한 자원으로 생각해온 근대의 자기 증식 논리에 대한 반성적 시선을 함유해갈 것이다. 그만큼 생태적 사유와 실천은 치유 불가능 단계에 빠진 지구의 기후위기와 맞물리면서 그 중요성이 하루가 다르게 커져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주와 호흡하면서 자연의 '스스로 그러함'을 되돌려주려는 기획을 통해, 윤리적 차원을 넘어 일종의 우주적 연민으로 그 영역을 확대해가야 한다. 그리고 사물의 배후에 있는 본질을 읽어내고 표현하는 발견의 감각을 통해 생태시편이라 명명되어온 서정시의 기율과 감각을 성숙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애송시 전통이 지나치게 사사로운 감상적 사랑 이야기가 많았던 것을 되돌아보면서 더욱 근본적인 인류적 의제로 그 권역을 넓혀가기를 소망해본다.

이때 우리는 인간을 위한 환경 차원으로 자연을 한정하는 경향도 경계되어야겠지만, 인간을 배제한 일방적인 자연 숭배 속성도 충분히 경계해야 한다. 한술 더 떠 염인증에 가까운 인간 혐오를 보인다든가, 대안 없는 문명 비판을 반복적으로 양산하는 것은 서정시의 주체인 인간에 대한 심층적 사유를 결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연과 함께 역사와 삶을 꾸려가는 공생적 주체이지 그저 내몰려야 할 대상이거나 수동적 관찰에 머무는 관조자가 아니지 않은가. 서정시에서 사물에 대한 재발견의 시각과 균형 감각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결국 앞으로 펼쳐질 생태시편들은 인간에 대한 일방적 혐오와 자연 신비주의를 벗어나, 부단히 일상으로의 환속 통로를 열어두면서, 그동안 망각되었던 인접 가치들을 활발히 끌어들이는 데서 완성되어갈 것이다. 그리고 '위드 코로나' 시대의 시적 윤리학은 전혀 새로운 생태적 사유와 실천을 통해 한층 더 깊고도 스케일 큰 속성을 부여받을 것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