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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뜻 몰라 '사'흘을 '4일'이라니
'문해력' 부족한 사람들 점점 늘어
학생들 글읽기 싫어해 어휘력 부족
동네책방 '친숙한 공간만들기' 필요
자주찾으면 '읽기 공포증' 해소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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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문화평론가
고등학교 사회 수업시간, 교사가 사회 불평등 현상을 보여주는 영화로 '기생충'을 소개하며 "이 영화의 구성 초기에 가제는 데칼코마니였대요. 가제가 뭘까요?"하고 물으니 "랍스터요"라는 답이 나왔다. EBS '당신의 문해력'이라는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다. '가제=랍스터'라는 학생들의 대답은 장난이 아니었고, 이어지는 수업 내내 교사는 모르는 단어를 설명하는 데에 시간을 보내느라 진도를 나가기 어려웠다. 성적이 그래도 괜찮은 편인 학생들이 있는 반인데도 이 정도라니, 작년 광복절 3일 연휴 때 화제가 된 '사흘 사태'의 원인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흘'의 뜻을 몰라서 '사'흘이니 3일이 아니라 4일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고, 사흘은 난데없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광복절 연휴에 3일 쉰다'는 기사에는 "4일 쉬는데 왜 3일 쉰다고 쓰느냐, 기자가 무식하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평소 맞춤법에 예민한 편인 나에게 이 '사흘 사태'는 꽤 충격적이었다. 이해는 고사하고 아예 단어를 모르는 수준이라면 맞춤법조차 따질 수 없지 않은가.

이런 상황이다 보니 글자는 읽어도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글을 읽고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인 '문해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당신의 문해력' 팀이 성인 883명을 대상으로 한 '문해력 테스트' 결과, 평균은 54점에 불과했다. 온라인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이 테스트를 해보면 그 결과에 깜짝 놀랄 사람이 많을 것이다. 성인이 이 정도라면, 코로나19로 비어버린 작년의 학습 공백을 생각해볼 때 학생들의 상황은 더 나빠졌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보면 글을 보면 귀찮다고 생각하고, 길이를 보고 읽을지 말지를 판단하는데 세 줄만 넘어가면 읽지 않으려고 한단다. 안 읽으니까 어휘를 알 수 없고, 뜻을 모르니까 글을 더 안 읽게 되고, 그러다 보니 공부를 포기하고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지식마저 제대로 습득하기 어려운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된다. 학생뿐만 아니라 성인들 역시 비슷한 난관에 봉착해 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쓰고 있는 이 칼럼이야말로 하얀 것은 종이요 까만 것은 글씨인 긴 글인 셈이니 '이 글을 누가 읽을까' 싶어 마음이 답답해진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공지사항을 읽지 않는 학생들을 위해 내용을 요약정리해서 카드뉴스로 만들거나 이모티콘 잔뜩 넣어 카톡으로라도 전달한다지만, 종이신문 칼럼을 읽지 않는다고 별다른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읽기 자체가 귀찮아진 시대, 해결책은 없을까? 우연히 대전의 소식을 접했다. 올해 초, 대전에서 지역화폐 '온통대전'을 통해 동네책방에서 책을 사면 30%의 캐시백을 지급하는 '지역서점 캐시백 지급사업'을 시행했다. 그 결과 한 달 동안 지역서점 매출 증가액이 캐시백 지급에 사용한 예산의 6배인 18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시민공모사업에서 1위로 선정된 이 사업의 성과로, 상당수 동네책방에서 결제를 하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멋지다. 인천에서도 이미 인천e음카드가 캐시백 10%의 혜택을 통해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으니, 대전 사례를 참고해 인천e음카드의 혜택을 늘려 동네책방에서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어떨까?

책은 고사하고 글 자체를 읽기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비롯해 문해력이 떨어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동네책방이 더 친숙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꼭 책을 사지 않더라도 책과 함께 있는 환경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덮어놓고 사다 보면 언젠가는 읽는다"는 한 동네책방의 재기발랄한 구호처럼, 책이 늘 주변에 있어서 익숙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야말로 느리지만 확실한 해결책이 아닐까? 지금으로서는 내 상상일 뿐이지만 매일 학교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는 날에 동네에서 책방을 찾아보고 마음에 드는 책방에 들러서 시간을 보내고, 책을 마음껏 보고 고를 수 있도록 지원한다면 더 좋겠다. 그렇게 학생들과 동네책방 사장님들이 만나기 시작한다면, 만남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에피소드들이 풍성해지고 학생들의 '읽기 공포증'도 조금은 해소되어 있을 것이다.

/정지은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