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동해산 명태는 국민 생선이었다. 보관 상태에 따라 생태가 동태가 되고, 코다리·북어로 말려져 식탁에 올랐다. 강원도 최북단인 거진항에는 생태찌개 전문 식당이 유난히 많았다. 갓 잡아올린 생태에 소금만으로 간을 한 이 지역 생태탕은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는 극찬을 받았다. 저녁엔 든든한 술안주였고, 아침엔 시원한 속풀이였다.
거진항 거리를 채웠던 생태 집은 사라지고, 동태찌개 식당 몇이 명맥을 잇는다. 2000년대 초 기후 변화로 동해안 명태가 자취를 감추면서 생태찌개 식당들이 된서리를 맞았다. 정부는 지난 2019년부터 동해안의 생태 포획을 금지하고 처벌 규정까지 만들었다. 국내산은 씨가 말라 러시아·일본산으로 대체됐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이 침수되면서 오염수 유출이 우려됐다. 정부는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안전도에 의문이 제기되고 국민 불안이 커지자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수입을 금지했다. 이후 후쿠시마 인근 8개 현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일부 수산물은 금지 대상에서 해제됐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해양에 방출하기로 한 것과 관련, 정부가 일본산 수산물에 대해 원산지 검사와 단속을 강화하기로 했다. 해양수산부는 주요 수입 수산물 17개 품목에 대해 유통 이력을 관리하고 있다. 이 중 일본산 수산물은 가리비, 참돔, 멍게, 방어, 명태, 갈치, 홍어, 먹장어로 8개 품목이다. 연간 수입 물량은 3만t 규모다.
소비자 심리를 꿰뚫는 대형유통업체들은 일제히 일본산 수산물을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본산 유입에 민감하다는 점을 의식해 일찌감치 손절한 거다. 전통시장과 음식점들도 판매 금지 대열에 가세했다. 그나마 근근하게 버텨온 생태찌개 집들마저 죄다 문을 닫을 판이다.
식탁에 오르는 먹거리는 안전성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 하지만 근거 없는 막연한 추측과 불안감으로 소비가 위축되어선 안 된다.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데 정부 입장은 어정쩡하다. 과학적 분석을 통해 원전 오염수와 수산물 안전성과의 인과 관계를 규명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발생하지도 않은 광우병을 걱정하면서 수많은 국민이 촛불을 들었다. 근거 없는 선동에 나라가 흔들렸다. 국민 식탁이 불안해지면 사회 질서도 어지러워진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