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전쟁·내전 위협서 해방 고민'
아인슈타인·프로이트 편지 90여년
국제연맹, 국제연합으로 바뀌었지만
이번사태에 쓸모없어 보이는건 여전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을 접할 때면 분노와 슬픔이 몰아친다. 가령 한 살배기 영아가 오른쪽 눈에 고무탄을 맞은 사진을 보았을 때 그러했다. 집 근처에서 놀다가 미얀마군이 가한 무차별 총격에 당했다고 한다. 전투기가 카렌족 마을을 공습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경악하기도 했다. 쿠데타 규탄시위를 이끌던 청년 웨이 모 나잉이 구금된 뒤 처참하게 고문당한 사진을 보았을 때는 섬뜩했다. 미얀마 군경에 끌려간 뒤 고문으로 사망하는 사례는 계속 전해지고 있다. 띤잔 축제기간(물 축제, 4월13~16일)을 흥겹게 즐기는 미얀마군의 영상이 보도되기도 하였다. 그네들이 희생자의 시신에서 장기를 꺼내는가 하면, 시신을 돌려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한다는 증언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유엔은 도대체 무얼 하고 있나. 미얀마 시민들은 국제사회에 R2P를 요청해 왔다. R2P(responsibility to protect)란 주권국가 안에서 벌어지는 인권 유린에 국제사회가 개입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무력하기 짝이 없다. 지난 3월10일 미얀마 군부가 항의시위를 폭력 진압하는 데 대한 규탄 성명이 마련되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초안에서 크게 후퇴한 장면이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쿠데타 상황에 대한 유엔의 개입이 이미 충분히 늦었음을 미얀마 청년들은 다음과 같은 문구로 냉소하고 있다. "70일 동안 고작 700명 죽었다. 천천히 해라, 유엔. 우리는 아직 수백만명이 남아 있다." 미얀마 쿠데타에 관한 한 유엔은 실질적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일찍이 아인슈타인은 어떻게 하면 인류가 전쟁·내전의 위협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가, 고민을 드러냈던 바 있다. 국제연맹 국제지적협력협회는 "국제연맹과 지적 생활의 공동 이익에 기여할 것으로 여겨지는 문제들"을 주제로 지식인들의 편지 교환을 주선하였던바, 1932년 협회로부터 참가 요청을 받은 아인슈타인은 프로이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와 같은 고민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당시 파시즘의 급격한 확산 상황이 전쟁 발발에 대한 두려움을 자극했을 터이다. 프로이트라고 마땅한 해답을 가졌을 리 없다. "문명의 발전을 촉진하는 것은 동시에 전쟁을 억지하는 작용도 한다"고 방향만 단언할 뿐 구체적인 방안은 없었기에 다음과 같이 답장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말한 것에 실망했다 해도 용서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의 편지가 관념으로만 일관했던 것은 아니었다. 파괴본능을 통해 인간을 설명해 나가는 논리가 읽을 만하며, 국제연맹의 한계를 지적하는 대목은 구체적이다. "인류는 모든 이해관계의 충돌을 판결할 권한을 가진 중앙권력기구를 설치하는 데 협조해야만 전쟁을 확실히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구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최고 결정 기관이 창설되어야 하고, 둘째는 그 기관이 필요한 권한을 부여받아야 합니다. 필요한 권한을 갖지 못한 기관은 아무 쓸모도 없을 것입니다. 국제연맹은 이런 종류의 기관으로 구상되었지만, 두 번째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습니다."('왜 전쟁인가?', '문명 속의 불만', 열린책들)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가 공개적으로 편지를 왕래한 지 90여년이 흘렀다. 그동안 국제연맹이 국제연합으로 바뀌었지만, 미얀마 쿠데타 상황을 두고 보건대 별다른 쓸모가 없어 보이는 것은 여전하다. 그리하여 두 명의 석학이 품었던 고민은 지금도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인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역사는 과연 발전하는 것일까.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민교협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