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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벽 위에서 쏟아져 내린 개나리 줄기들

옹벽에 페인트칠을 한다. / 보도블록 바닥으로

페인트 자국 흘러내린다. //

옹벽 밑에는

일렬횡대로

종이박스가 깔렸다. //

할머니들은

머릿수건을 쓰고 앉아

나물과 밑반찬을 판다. //

개나리 줄기들이 내려와

허옇게 센 머리카락 쓰다듬는다. / 염색물을 들이기 위해

길고 가는 붓질을 한다. //

노랗게 물든 단무지들

플라스틱 대야에 담겼다. / 쳐다보는 사람 머릿속에

아득히 색소 물을 들인다. //

이윤학(1965~)


권성훈교수교체사진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물들다'라는 말은 자신도 모르게 스미거나 옮아간다는 동사다. 봄이 되면 세상이 화사하게 보이듯이 우리의 마음도 봄처럼 자동적으로 닮아간다는 것이다. 길가에 노랗게 울타리를 치고 있는 개나리 줄기는 그 주변에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표시한다. 그것도 땅에서 힘겹게 올라와 '옹벽 위에서 쏟아져 내린 개나리 줄기들이 옹벽에 페인트칠을' 하는 것처럼 만개한 개나리꽃이 스며든다. 거기에 속해 있는 사람은 그것을 응시하지 못하지만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은 '허옇게 센 머리카락 쓰다듬듯이 염색물을 들이듯이' 노랗게 번지고 있는 시공간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쳐다보는 사람 머릿속에 있는 아득한 색소 물'이다. 봄으로부터 감염된 아름다운 전파의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얼마든지 허락할 수 있는 이러한 감염은 무엇을 물들이냐가 아니라 무엇이 물들이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존재로 채색되어 있는지도 살펴볼 일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