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으로 불리던 해상 요충·수운 집결지다
지금은 누구도 못다니는 기구한 불통 수역
南北이 협력해 제일 먼저 살려내야 할 물길
연미정에 오르면 오른쪽으로는 김포 강화해협으로 염하가 흘러가고 앞으로 보이는 한강하구라고 부르는 광대한 기수역(汽水域)이 펼쳐지는데 건너편은 바로 개성특별시 개풍구역 들녘이다. 연미정 앞 바다를 한강하구라고 부르는데 이곳으로 흘러드는 강이 어디 한강뿐인가? 임진강도 예성강도 있는 데다 지명의 역사적 근거가 분명치 않다. 통진의 옛 지명에 조강진, 조강포, 조강리가 있다. '세종실록'이나 '동국여지승람', '호구총수' 등의 문헌이나 고려 문호 이규보의 '조강부'나 조선 문인 신유한의 '조강행(祖江行)'과 같은 작품을 보면 이 일대는 오랫동안 조강(祖江)으로 불려왔던 해상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조강이 우리말의 음차표기인지 장소성을 내포한 한자어인지는 더 살펴봐야겠다.
조강 수역은 전국 수운(水運)의 최종 집결지로 선상 파시(波市)가 열리는 곳이기도 했다. 바닷길을 통해 전국에서 모여든 선단은 이곳에서 물때를 기다렸다가 수로를 따라 다음 행선지를 향해 떠나갔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조강 수역에서 아비뻘인 예성강과 임진강, 한강이 갈라지고 그다음엔 손자뻘인 지류들이 갈라졌으니 이곳이 여러 강의 조상, 할아비의 강이라고 여긴 지리적 상상도 가능하겠다.
조강 일대는 큰 강물들의 합수처이면서, 민물과 염수가 뒤섞이는 기수역이다. 물이 어우러진다는 뜻의 파주시 '교하(交河)'가 이곳의 특성을 잘 담은 지명이다. 그러고 보니 이 합수처를 바라보는 강화 연미정의 지명도 월미곶이다. '월미'는 인천 월미도나 포항 월미곶에도 나타나는 지명요소로 물이 교차한다는 뜻인 '얼매'의 음차표기로 추정된다.
조강의 다른 이름은 '삼기하'다(祖江一名三기河). 한강과 임진강과 예성강의 세 물이 갈라지는 물류와 교통의 요충이란 뜻이니 어쩌면 조강이라는 지명과도 상통하는 별명이겠다. 삼남지방과 해서(海西)의 수운망이 합쳐지고 다시 갈라지는 곳이었으며, 조수 때문에 전국에서 온 배들이 물때를 기다려야 하는 기항지이기도 했다. 조선 후기의 문장가 신유한(申維翰, 1681~1725)은 '조강행'이라는 서사시에서 조강 연안에 모인 선단과 배가 실어나른 물자들이 이룬 일대 장관을 배들은 베틀의 북처럼 오가고, 생선과 소금과 과일과 미곡과 포백이 산처럼 쌓여 있으며 하루에도 백 척 천 척의 범선이 통과한다고 노래한 바 있다.
'조강은 일명 삼기하(三기河)라/ 세 강이 여기서 합수하여/서해바다로 모여 가기 때문이지요/…/생선과 소금이며 과일 등속/미곡과 포백이 산처럼 쌓이고/이 나루 지나가는 배/하루에도 백 척인지 천 척인지'. -신유한, '조강행'에서
한편 조강 수역으로 모이는 강의 하구는 하구언이 없어 바다로 열려 있다. 1953년에 체결된 정전협정 1조5항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만우리 인근에서 인천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 인근까지 67㎞의 물길을 남과 북 민간의 통행을 보장하는 중립수역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곳은 남도 북도, 누구도 다닐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기구한 물길로 남아 있다. '평화의 배'가 이 막힌 물길을 상징적으로나마 열어보려 했지만 군 당국에 의해 번번이 저지되어 이곳이 불통의 수역임을 재확인해 줄 뿐이다. 세상에서 건너지 못하는 유일한 강, 저 '할아비의 강'이야말로 남과 북이 협력하여 제일 먼저 살려내야 할 물길이자 수역 아니겠는가.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