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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으로 암호화 된 세계에선
감각 통한 창작·수용 있을 수 없어
가상암호, 추상적 이데올로기 자리
점령한 새로운 괴물일지도 모른다
지금 NFT유령 세계 네트워크 배회

정한용 시인
정한용 시인
요즘 가장 '핫'한 뉴스 중 하나는 암호화폐가 아닐까 싶다. 엊그제 '도지코인'이라는 좀 웃기는(?) 암호화폐의 가격이 100배나 올랐으며 거래 총액이 우리나라 주식거래를 넘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암호화폐 광풍이 부는 것 같다. 뭔가 엄청난 것 같은데, 사실 그 정체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모든 암호화폐의 바탕은 블록체인에 있는데, 오늘은 NFT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어려운 용어를 쓴다고 나무라지 마시고, 잠시 함께 고민해보시면 좋겠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앞으로 블록체인의 세계에 살게 될 것이다. 미리 한번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NFT는 '대체 불가능 토큰(Non-fungible Token)'의 약자로, 블록체인을 현실에서 실물로 구현한 첫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한 달 전쯤, 미국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매일: 첫 5,000일'이라는 작품이 785억원에 낙찰되었다는데, 이것은 화가가 붓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비플'이라는 예명으로 알려진 한 작가가 컴퓨터로 만든 300메가가량의 디지털 파일이다. 그가 2007년부터 매일 한 개씩 디지털 아트를 만든 뒤, 이것을 하나의 파일로 조합해서 블록체인 암호화를 거쳐 NFT 플랫폼으로 올려놓은 것이라고 한다. 뭔가 복잡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문가가 아닌 누구라도 아주 쉽게 NFT를 구현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회의와 혼란에 빠진다. 전통적으로 예술작품이라 여겼던 것과는 매우 다르다는 건 인정해도, 정말 고흐나 피카소 같은 작가의 그림만큼 비싸게 팔리는 것이 정상적이냐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마리킴이라는 작가의 디지털 아트는 NFT 플랫폼에서 6억원에, 심지어 트위터 창시자 잭 도시의 최초 트윗 한 줄이 28억원에, 방귀 소리를 녹음한 오디오 파일이 49만원에 팔렸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오픈씨'라는 NFT 시장에서는 수만 건의 디지털 '예술작품'이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

이제 막 개장한 시장(글자 그대로 '마켓플레이스'라고 부른다)이기에,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 아무도 모른다. 실제의 가치와 전혀 상관없는 일종의 거품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무너질 거라고 비관적으로 진단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단순한 투기성이라고 보기엔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파고가 너무 크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세계가 현실에 미치는 영향력이 엄청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질문을 바꾸면, 가상으로만 존재하는 예술이 현실 세계의 작품을 대치할 수 있을까? 디지털 파일이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을 가치의 전환이 타당한 것일까?

이제 우리는 기존의 예술 개념을 조심스레 재검토할 때가 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작품은 작가라는 '주체'에 의해 새롭게 '창작'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현대 미술로 들어오며 '창작'의 개념은 달라진다. '이미 만들어진' 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만으로 충분히 작품을 만든다고 믿게 된 것이다. 소위 말하는 '개념미술'이 여기 해당한다. 그런데 이제는 그 '주체'까지도 와해되는 단계에 이른 것이 아닐까. 즉 작가가 필요하지 않은 예술 말이다. 상상하기 어렵지만, 디지털 코드에는 작가라는 주체가 개입할 여지도 없거니와, 블록체인에는 어느 한 개인의 통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NFT는 철저하게 주체의 소멸을 낳는다.

우리는 지금껏 작가가 작품에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창작품이 완성된다고, 또 창작된 가치를 감상자가 수용하는 과정이 예술을 향유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블록체인으로 암호화된 세계에서는 그런 일은 벌어질 수 없다. 물리적 실체가 없으니 감각을 통한 창작이나 수용이 있을 수 없다. 원래 예술은 작품 너머를 지향한다. 그렇다면 꽃 그림을 보며 우리가 '조작된'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건, 일종의 추상적 이데올로기를 주고받는 것과 같다. 이와 비슷하게 블록체인에 숨어 있는 가상의 암호는 어쩌면 그 이데올로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점령한 새로운 괴물일지 모른다. 지금 NFT라는 유령이 전 세계 네트워크를 배회하고 있다.

/정한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