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문화·이념 전파하는
담론적이면서 새로운 문화·경험
만들어내는 대화적 미디어이기도
'만철' 남북~시베리아~유럽 연결
교통수단·세계평화 매개역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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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
철도는 미디어다. 흔히 미디어라 하면 신문·잡지·TV·유튜브 등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미디어의 범주와 종류는 이보다 훨씬 넓고 또 많다. 미디어연구의 획을 그은 마샬 맥루언(1911~1980)은 인간의 인식과 감각의 확장을 동반하는 모든 것을 미디어로 규정한다. 가령 교통수단은 발의 확장이며, 안경과 현미경 등은 눈의 확장에 해당한다. '미디어는 마사지다'라는 그의 유명한 명제는 미디어와 관련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인식과 세계관은 물론 사회의 변화를 촉발하기에 마치 온몸에 마사지를 하는 것처럼 삶과 생활의 구석구석에 두루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철도는 근대 자본주의의 발전을 이끈 견인차였으며, 생활 방식과 시간 및 공간에 대한 경험과 인식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근대 초기 제국주의 국가들이 앞을 다퉈 철도부설권을 놓고 격렬하게 각축을 벌였던 것은 산업과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고, 해당 지역과 공간에 대한 지배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약소민족들의 입장에서 철도는 고약한 축복이었다. 새로운 근대문명과 생활의 시작이라는 축복과 함께 억압적 식민지배체제가 더욱 공고화, 가속화하는 양날의 검이었기 때문이다.

1927년 '만선일보'에서 나온 '만주철도여행안내'는 철도가 갖는 그와 같은 이중성을 극명하게 잘 보여준다. 총 313쪽에 달하는 '만주철도여행안내'는 철도이용객들을 위한 단순한 가이드북이 아니라 일본인들을 위한 만주학개론으로서 만주지역을 'Y'자로 분할한 만주철도 노선이 닿는 만주 전역을 다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기후·풍물·역사유적·식생·농업 생산·광물자원 등을 모두 조사, 정리하고 있어서 순수한 관광안내 책자라고 보기 어렵다.

인쇄와 출판은 '만선일보'가 했지만, 실제 저자는 최고의 두뇌 집단으로 후일 만주국 건국을 기획하고 입안했던 '만철조사부'였다. 만주국은 청의 마지막 황제 아이신줴러 푸이(愛新覺羅溥儀, 1906~1967)를 집정으로 내세운 괴뢰국으로 만철조사부와 관동군이 만든 나라였다.

본래 만주는 공간을 가리키는 지명이 아니라 북쪽의 해서 여진·동쪽의 동해 여진·중앙의 건주여진 등 여진족을 이르는 족명(族名)이다. 중국인들은 만주국을 치욕의 역사로 보기에 만주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위만주국(僞滿洲國)' 또는 동북 삼성이라 지칭한다.

만주역에 철도가 부설된 것은 1898년 러시아가 랴오둥 반도 조차조약으로 둥칭철도(東淸鐵道)를 부설하면서부터이며, 남만주철도는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일본이 포츠머스강화조약(1905. 9)과 청일만주선후조약(1905. 12)을 통해 철도 관련 이권을 러시아로부터 이양받고 이듬해인 1906년 남만주철도주식회사를 발족시키면서 본격화한다. 이를 통해 일본은 한반도를 X자로 종관하는 철도에 남만주철도까지 손에 넣음으로써 식민지배를 위한 전략철도노선을 구축한다. 다롄·봉천(선양)·신경(창춘)·하얼빈 등을 연결하는 만철은 최고 시속 130㎞에, 냉난방 장치에 식당 칸까지 갖춘 특급열차 아시아호를 앞세우고 만주 전역을 누비고 다녔다.

맥루언은 정보의 정세도와 대중의 참여도를 기준으로 미디어를 쿨 미디어와 핫 미디어로 나누고 있는 반면, 빌렘 플루서(V. Flusser, 1920~1991)는 정보의 분배와 저장을 위주로 하는 담론적 미디어와 창조를 중심에 둔 대화적 미디어로 분류한다. 철도는 여객과 물자만을 수송한 게 아니라 문화와 이념을 전파하는 담론적 미디어이면서 새로운 문화와 경험을 만들어내는 대화적 미디어이기도 했다. 만철은 기본적으로 식민 지배를 위한 시스템이었다. 철도가 이런 흑역사를 딛고 21세기에는 남북과 시베리아에 유럽을 연결하는 진정한 교통수단, 세계평화를 매개하고 창조하는 견인차로 거듭나길 기원해본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