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게 파내고 바닷물을 유입할 필요도 없다
남북이 서명한 많은 합의문 이행만 하면 돼
北, 변화 필요성 느끼도록 인내·집요함 절실
1488년 '바르톨로메우 디아스'란 포르투갈 항해사가 희망봉을 발견한 이후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시켜 주는 당시의 바닷길은 수세기동안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남대서양의 섬 세인트 헬레나를 지나 아프리카 대륙의 남단을 돌아야 하는 머나먼 항로였다. 대항해시대를 지나 근대국가들이 고개를 들면서 이집트 땅에 운하를 만들 생각을 수없이 해 왔지만, 프랑스 외교관 '페르디낭 레셉스'가 착공을 기획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실행하지 못하였다. 은퇴 이후 더욱 추진력을 발휘하였던 레셉스는 10년의 시간을 모래바람 속에서 견뎠다.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1869년 수에즈 운하가 완공되자 이집트를 가르는 수에즈는 새로운 희망이자 세상의 미래가 되었다. 희망봉을 외면하는 모든 선박들은 수에즈를 관통하는 단축항로의 고객이 되었다.
풍운의 수에즈. 그 역사(歷史) 속에는 한 인간의 집념이 스며있다. 19세기는 영국과 러시아가 세계 전역에서 각축하고 있었지만, 영국의 헤게모니에 당시의 강국 프랑스도 시시각각 도전하고 있었다. 이집트에서 여러 차례 근무한 프랑스인 레셉스는 영국의 입지가 강한 이집트에 모국 프랑스의 영향력을 부식시키려는 생각이 강했다. 레셉스의 개인적인 외교역량은 막대한 통행료 수입을 보장받는 이집트 통치자의 이해관계와 부합하여 역사(役事)를 완공했다. 수에즈 운하의 토목공사로 피라미드의 나라에 프랑스의 입지가 생긴 것이다. 식민외교에 기치를 올리던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외교에 레셉스는 해야 할 기여를 하였고 그의 이름은 수에즈 운하의 좁고 긴 물길을 따라 지중해의 물살을 가르며 전해오고 있다. 바람을 거스르며 살았던 남자 레셉스는 외교정치의 격랑에 부침해 온 '풍운의 수에즈' 속에 주인공으로 남아 있다. 절실하게 필요했던 단축항로를 만든 주인공이다.
한국에서 북한으로 가는 직항로가 아직 없다. 인천에서 베이징으로 향하는 항공편은 하루에도 수십 편이나 되지만 인천에서 평양까지 가는 직항편은 전무하다. 가려면 베이징을 경유하는 원거리 항로뿐이다. 시베리아횡단철로가 한반도를 부르고 있지만, 운하가 개통되기 전의 수에즈처럼 막혀 있다. 한반도의 수에즈는 언제 완공될까. 김해공항에서 신의주까지 가더라도 1시간 남짓이면 된다. 단축항로가 개설을 기다린다. 수에즈 운하처럼 땅을 깊게 파낼 필요도, 바닷물을 유입할 필요도 없다. 수에즈같이 10년의 건설기간도, 막대한 건설비도 필요 없다. 남과 북이 합의만 하면 된다. 지금까지 서명한 많은 합의문을 이행만 하면 된다.
현실의 자화상은 난해한 추상화에 가깝지만, 미래의 풍경화를 그려보는 것은 흥미롭다. 남북한 직항로가 열리려면 미 측이 원하는 북한의 비핵화든 우리가 표현하는 한반도의 비핵화든 북핵 문제의 해결이 선결 요건이며 제도화된 평화는 충분조건이다. 만성화된 무거운 이슈 앞에 미래에 대한 상상조차 가물거리고 있다. 프랑스 외교관 레셉스가 스쳐 지나간다.
비행이나 선박항로건, 도로나 철도노선이건, 모든 것이 북한의 결심에 달려있다. 미래의 희망적인 청사진을 그려보는 것은 간단하고도 쉬운 일이다. 경기도의 학생들이 기차로 개성공단을 거쳐 황해도의 유적지를 탐방하고, 목포의 청소년들이 원산의 갈마공항을 통해 갈마디즈니 공원에 수학여행을 가는 상상도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간이역이다.
중국의 덩샤오핑은 어떻게 자신감을 가지고 미래를 열었을까. 중국에 이어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어떻게 제국의 철문을 열어젖혔을까. 수많은 분석들 가운데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필요성이었다. 수에즈 운하를 열었던 것처럼, 사회주의를 신봉하던 사람들도 필요 때문에 체제의 틀까지 바꾸었다. 우리는 지난 30여년 평양이 진지하게 변하기를 기대해 왔고 인내하면서 기다려 왔다. 아직도 북한의 파워 엘리트들은 변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절박해야만 한걸음이라도 내디딜 수 있다. 밝은 색채의 물감으로 한반도의 새 역사를 그려나가야 하는 우리에게 19세기의 프랑스인 레셉스가 품었던 인내와 집요함이 절실하다.
/최승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