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남' 심리적 기대와 생활수준
미래전망 사이 상대적 박탈감 느껴
왜 사회적 차별 받아야하는지 울분
'고립무원' 상태 기회평등 약속하면
그나마 기꺼이 마음 줄 수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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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이대남'이 최근의 화두다. 그 구성원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지만, 사람들은 지금의 '이대남'과 수년 전의 '이대남'을 동일한 집단으로 인식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한때 현 정권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세대들이 최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사실에 놀라움을 드러낸다. 과거의 '이대남'이 보여준 모습이 세대적 특질은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다. 이 현상의 원인을 둘러싸고 정치인들과 평론가들은 아직 토론 중이다.

구조적으로 사회변동, 특히 계층 간 사회이동을 보는 사회학자의 눈에서 보면 '이대남'이 처한 현실은 예측 가능하고 필연적이기도 하다. 여야의 일시적 처방들이나 정책들도 이 구조적 사회변동을 되돌리기는 어렵다. 그 구조적 사회변동이란 계층구조가 어느 정도 안정화된 이후의 부모세대와 자식세대 간의 계층이동을 말한다. 나라에 따라 다르지만, 중류층 부모의 자식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하층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류층 부모의 자식들 가운데 일부는 중류층으로 상승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중산층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그 국가의 경제성장이 엄청나게 가속화되어야 한다. 과거 586세대들이 경제성장과정에서 대거 중산층에 편입될 수 있었듯이 인구의 증가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저성장의 국가에서 세계 최저의 출산율로 인구증가가 정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모두를 중류층에 머무르게 하는 경제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양상은 서울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지금의 20대는 50대 부모들 품안에서 자랐다. 권위주의시대에 태어나 민주화와 정보화, 세계화의 와중에서 살아왔던 부모들은 경제성장의 단꿀을 맛보면서 대부분 계층상승을 경험했던 세대들이다. 그들은 민주화의 짐을 지고 투쟁하면서 살았다고 하지만, 일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아파트와 차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고, 집값 상승의 혜택을 많이 누렸던 세대였다. 자녀양육과 교육비에 시달렸다고 하지만 기껏해야 2명을 넘지 않는 자식들을 키웠으며, 자녀 결혼에 체면 세우느라 무리하지 않으면 이제는 여유있게 살 수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자식세대인 20대는 어떠한가? 그들은 이미 부모가 제공한 중산층의 삶에 익숙해 있다. 부모가 준 것이든 스스로 아르바이트로 얻어냈든 간에 대학 시절의 해외여행 경험쯤은 이미 몸속에 내재해 있다. 설사 하류층의 부모를 두었다 할지라도 중산층의 문화를 세대문화로 수용한 바 있다. 그 경험을 통해 그들은 자유주의적인 삶과 사고에 익숙해 있기도 하다. 그들은 이러한 삶이 부모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지속되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치솟는 집값을 보면서 선배들이 타고 올라갔던 사다리가 치워졌다는 걸 깨닫게 된다. 취업 절벽은 스스로가 계층하강이동의 플룸라이드를 타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한다. 또한 그들은 가족, 직장, 국가 그 어느 것도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걸 안다. 가족은 노령화의 덫에 걸려있고 국가는 더 이상 유능하지 못하고, 심지어 직장도 종신고용이나 사내복지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다.

그 '이대남'은 자신이 더 이상 올라가기도 힘들고 오히려 추락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제임스 C. 데이비스의 J곡선에 따르면, 그들은 심리적 기대와 심각하게 유리되는 실제 생활수준 혹은 미래전망 사이에서 극심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는 그들이 너무 오래 남성으로서의 혜택을 입어 왔고, 따라서 하나하나 벗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들이 왜 사회적 차별의 수혜자로서 비난받아야 하는지 울분을 피력한다. 586꼰대들은 자신들의 경험에 비추어 충분히 노력하면 성공이 보장된다거나, 그래도 국가가 질 낮은 급식을 줄 수 있다고 약속한다. 막차를 타고 사다리를 올라선 40대들은 이른바 진보정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고집스럽게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대남'은 홀로 고립되어 사회혁명이라도 추구해야 할 판이다. 이 구조적 상황에서 고립무원한 그들에게 자유주의적 기회의 평등이라도 열어주겠다고 약속한다면 그나마 기꺼이 마음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마저 그들의 추락을 지연시키는 날개가 아니라는 걸 그들은 곧 알 것이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