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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필 때 / 목련은 몸살을 앓는다 / 기침할 때마다 / 가지 끝 입 부르튼 꽃봉오리 / 팍팍, 터진다



처음 당신을 만졌을 때 / 당신 살갗에 돋던 소름을/ 나는 기억한다 / 징그럽게 눈 뜨던 / 소름은 꽃이 되고 / 잎이 되어 다시 그늘이 되어 / 내 끓는 청춘의 / 이마를 짚어주곤 했다



떨림이 없었다면 / 꽃은 피지 못했을 것이다 / 떨림이 없었다면 / 사랑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 그러나 더 이상 / 떨림이 마음을 흔들지 못할 때 / 한 시절 서로 끌어안고 살던 꽃잎들

시든 사랑 앞에서 / 툭, 툭 나락으로 떨어진다



피고 지는 꽃들이 / 하얗게 몸살을 앓는 봄밤, /

목련의 등에 살며시 귀를 대면 / 아픈 기침소리가 들려온다

박후기(1968~)

권성훈교수교체사진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당신이 그를 만났을 때처럼, 흔들리지 않고 시작되는 것이 있는가. 흔들린다는 것은 무의식에 있는 것을 깨운다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마음이 여기서 저기로 반응하는데 그것이 강렬하면 할수록 움직임도 커진다. 몸살을 앓고 있는 봄날같이 당신의 '가지 끝 입 부르튼 마음 꽃봉오리가 팍팍, 터지질' 않던가. 돌이켜보면 그런 당신도 '처음 당신을 만졌을 때'부터, '당신 살갗에 돋던 소름을' 잊지 못하는 것같이. 너무 화사해서 징그러울 정도로 피어나는 목련처럼 살갗에 돋던 소름들. 이것은 청춘의 '잎이 되어 다시 그늘이 되어' 보냈던 숱한 나날들을 기억한다. 떨림은 꽃이 되고 사랑이 되고 한 시절이 되어 툭툭 떨어져도 좋았다. 아직도 세월의 등 뒤에 사랑의 귀를 대면 '피고 지는 꽃들이 하얗게 몸살을 앓는 봄밤'이 당신을 깨우질 않던가. 봄날 꽃가루처럼 '아픈 기침소리'가 망각의 계절을 뚫고 날아다닌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