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로 평등한 사회를 보장안한다
이익 분배 정도 정치과정 통해 결정
행복 증진에는 한계효용체감 작용
미래 번영도 자원고갈·오염에 노출
토인비 말처럼, 인류 제대로 응전을

2021042701001117000054971
서명국 한국은행 인천본부장
현대경제에서 성장은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정치가들은 높은 경제성장률을 중요한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주식시장에서는 성장률 수치의 향방에 따라 주가가 큰 폭의 등락을 보이기도 한다. 인류가 기아상태에서 벗어나고 선진국 일반 국민의 밥상이 고대 왕들보다 풍족해진 것도 경제성장의 결과다. 하지만 경제성장이 우리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도깨비 방망이'는 아니다. 이하에서는 경제성장이 우리에게 제공하지 못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첫째로 경제성장은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 오히려 시장경제에서 성장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즉 생산성이 높거나 자본을 소유한 일부는 성장과정에서 보다 많은 소득을 향유하는 반면,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적은 소득만이 제공된다. 더구나 부의 대물림으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된다. 그러나 지나친 불평등의 심화는 사회적 갈등과 불안을 야기할 위험이 있으며 이에 따라 현재 대부분의 국가는 누진세와 소득보전, 최저임금 정책 등을 통해 불평등을 완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딜레마는 존재한다. 왜냐하면 지나친 평등 추구는 근로의욕을 감소시키고 생산비용을 증대시켜 성장을 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자유시장과 성장을 우선시하는 자유주의자와 평등한 분배를 강조하는 진보주의자 간의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선진국 간에도 정치철학의 차이에 따라 분배의 정도는 모두 다르다. 결국 경제적 평등의 정도는 성장이 아니라 정치과정을 통해 결정된다. 국민이 선택한다는 말이다. 무엇이 공평한 분배이며 어느 정도의 불평등이 용인되어야 하는지를 우리 모두가 생각해 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음으로 경제성장이 행복하고 좋은 사회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경제성장과 행복 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경제성장은 초기에는 절대 빈곤을 추방하고 교육, 건강 등 삶의 질을 개선시킴으로써 행복을 크게 증진시키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작용하면서 소득 증가에도 불구하고 행복감은 크게 증진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가족과 공동체에서의 사랑과 우정, 일과 취미활동 등을 통한 보람 등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근원적 행복은 경제성장 과정에서 오히려 축소될 수도 있다. 지난 수십년간 큰 폭의 소득 증가에도 불구하고 개인주의와 황금 만능주의의 확산으로 이혼이 증가하는 가운데 가족과 공동체가 해체되고 있으며 치열한 경쟁으로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난 것이 이를 방증한다. 그렇다고 성장을 멈추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과시적 소비를 위한 상품보다는 건강과 의료, 쾌적한 주거와 교통, 공원과 건전한 여가활동 중심으로 성장의 질을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근원적 행복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제성장은 미래 세대의 번영과 존속을 보장하지 못한다. 경제성장이란 지구 상의 자원을 이용하여 보다 많은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활동이다. 그러나 이에는 대가가 따른다. 1972년 로마클럽은 자원고갈과 환경오염 등으로 21세기에 성장이 한계에 달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는데 만일 앞으로도 전 세계가 무분별하게 성장만을 추구한다면 이런 예언이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지금도 공장과 자동차에서 나오는 환경오염 물질과 전 세계 소비자가 버리는 쓰레기 등으로 강물과 바다, 하늘이 오염되면서 지구가 병들어 가고 있으며 이로 인한 기후 변화의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가까운 미래에 우리의 생존이 위험할 수도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근래 UN 등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가 성장이 환경에 미치는 부작용을 인식하고 탄소배출량 규제, 신재생에너지 개발 등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노력을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투자 분야에서도 환경과 사회적 책임 및 거버넌스를 중시하는 ESG 투자가 힘을 얻고 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역사를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 묘사하였다. 성장에 따른 환경오염이라는 도전에 맞서 인류가 제대로 응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서명국 한국은행 인천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