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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 경기도 경제과학진흥원 노조위원장
지난달 26일 점심 무렵이었다. 토론회를 열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곧이어 지난해 1월 정규직으로 전환된 미화 여사님도 연락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기사도 대거 났다. 의구심이 들었다. 민주노총을 포함해 모든 대화 요구를 거절한 경기도다. 공문에 응답도, 사전협의도 없이 갑자기 관련 부서에서 날짜와 인원이 정해졌으니 참석 여부를 알려 달라는 것이다. 참석자 추천도 거부했다. 자기네들이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로, 정한 인원을 데리고 소통을 하겠다는 거다. 화는 났지만 토론회를 연다고 해 기대를 했다. 기자회견에, 1인 시위에, 가처분신청까지, 두어 달 동안 여러 사람들이 시끄럽게 했음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묵묵부답 아니었던가.

뚜껑을 열어보니 더더욱 이상했다. 배석한 시민단체 대표는 지난해 8월, 단체가 출범하자마자 경기북부로 기관 이전이 필요하다고 기고한 분인데 지사님과는 모른 체였다. 정책을 입안한 건 지사님인데 사회자라도 된 듯 응답자를 지정하며 토론을 주도했다. '도통령'이라고까지 불리는 지사님이다. 말을 끊고 순서를 정하는 지사님 앞에서 토론자들은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자유롭게 묻고 답할 거라 기대한 나는 너무 순수한 시민들이었을까.

내용도 이상했다. 주요 논점은 핵심을 비껴갔고 논리는 반복됐다. 몇 가지만 살펴보자. "절차 문제는 순환논리다." 나는 IMF와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겪으며 집이 경매를 당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경험을 했다. 지사님도 가난한 시절을 겪었다니 이해하실 것이다. 내 어머님은 자식들을 사랑하는 분이었다. 가족들을 앉혀놓고 집이 얼마나 어려운지, 당신들이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그간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설명했다. 가족들은 학비는 내가 벌마, 힘 합쳐 잘 버텨보자고 답했다. 존중이란 이런 것이다. 법적 절차 운운은 상처 입힌 사람이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할 말이 아니다.

기본권 얘기도 그랬다. 지사님은 "내가 변호사 출신이다.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 기본권 침해는 아니"라고 답하셨다. 나야 공공기관 노동자니까 그렇다 치자. 노동자들의 남편이나 아내, 엄마와 아빠를 둔 아이들은 무슨 죄가 있나? 공공기관 노동자의 가족이 아니었다면 집을 알아보고 학교를 옮기고 친구 잃을 걱정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헌법 교과서를 다시 펼쳐봤다.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들을 합당하지 않은 권한에 의해 침해하는 게 기본권 침해다. 지사님의 답변은 흔한 변호사의 것이었다.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분, 노동존중이 도정의 기조라는 분의 말씀치고는 참으로 냉담했다.

정말인가 싶은 이야기도 있었다. 무기직 노동자들은 당신 정책 덕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혜택을 누렸으니 희생을 감내해야 한단다. 희생의 무게가 더 무겁다면 더는 혜택이 아니다. 한 가지 더. 힘들게 취업에 성공한 젊은 직원들은 어떤 혜택도 입지 못했다. 요새 공공기관 입사란 정말 '하늘의 별 따기'다. 나만 해도 입사원서 100개 넘게 쓰고 최종 면접을 수십 번 탈락한 후에 입사했다. 요즘 청년들은 훨씬 더 치열하다. 갑자기 가라는 지사님 한 마디에 청년들은 또 얼마나 마음이 쓰렸을까. 무기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이 자리서 약속하기 어렵단 얘긴 쇼킹하기까지 했다. 공식적인 자리고 책임 있는 위치에서 답하기 어렵다는 걸 잘 안다. 이 모든 답변이, 노동자를 존중하시는 분의 답변으론 너무 이상했다.

이상한 토론회였다. 소통을 위한 자리인데 통하는 건 없었다. 난상도, 토론도 아니었고 형식도 내용도 이상했다. 최근 기사를 보니 경기도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3차 기관 이전에 찬성하는 인원이 62%밖에 되지 않는단다. 도민 대부분은 균형 발전 대의를 찬성할 것이다. 그런데도 기관 이전 관련 설문 결과는 예상 밖이다. 어쩌면 도민들도 소통 아닌 소통, 토론 아닌 토론에서, 지사님의 또 다른 모습을 조금은 알게 된 건 아닐까.

/김성원 경기도 경제과학진흥원 노조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