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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인간의 영원한 벗이자 위로
신비롭게도 계절은 어김없이 순환
인간사 어떠한 환란에도 변함없어
그래서 봄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난만한 빛 고단한 모두에게 퍼지길


사본 -김별아사진
김별아 소설가
안 올 것 같았다. 못 올 줄 알았다. 종내 다시 없을 지도 모른다고 징징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오고 있다. 애태운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은근슬쩍 다가와서 문득 곁에 있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표정과 고립된 마음과 세상은 얼어붙은 채 여전하지만 그래도, 봄.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슈베르트의 가곡을 들으며 겨우내 침묵했던 화분의 흙을 퍼낸다. 선율을 따라 '봄'의 음표가 메마른 흙 위에 흩뿌려진다. 그것들이 퇴비와 비료가 된다면야 좋겠지만 아파트 베란다의 열악한 환경에서 기력을 소진한 화분용 상토가 회생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농사라기엔 객쩍기 이를 데 없는 소꿉장난이지만, 배양토로 분갈이를 하고 새봄 파종 채비를 할 작정이다.

언택트 시대의 비대면 쇼핑은 날로 무궁무진해져 간다. 이제 인터넷 쇼핑몰에서 씨앗이며 모종까지 살 수 있다. 꽃 농장들도 생화를 집 앞까지 배송한다. 고객들의 '니즈'에 민감한 판매자들은 한꺼번에 텃밭 가꾸기에 필요한 일습을 장만할 수 있도록 편리를 제공한다. 배양토와 씨앗을 싹틔울 모종트레이와 지피포트를 장바구니에 담는다. 고심 끝에 씨앗은 루꼴라와 스위트 바질을 골랐다. 지난 겨울 뿌리고 남은 적축면상추까지 세 가지를 고루 심어볼 계획이다. 며칠 후 받아보는 것은 작고 마른 부스러기 같은 씨앗들이겠지만, 쇼핑몰에 게시된 사진에는 이미 그것들이 피워 올린 탐스런 이파리들이 청청하다. 연둣빛에서 초록으로 달려가는 봄의 빛이다.

소도시에서 태어나 자랐어도 나는 아스팔트 키드였다. 흙이 묻으면 더러운 듯 털어내고 푸성귀는 응당 마트에서 사는 걸로 알았다. 발밑을 살피기에도 바빠 고개를 들어 물이 오르는 나뭇가지를 쳐다볼 줄 몰랐다. 초록이, 봄빛이 얼마나 황홀하게 눈부신지 몰랐던 그때, 나는 어리고 어리석었다. 돌아가신 할머니들이 그토록 가는 봄을 아쉬워하며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에 감탄하던 까닭을 알지 못했다.

사람 말고는 아무것도 살지 못했던 삭막한 우리 집에 푸른빛이 깃들기 시작한 건 몇 해 전부터였다. 몽근짐을 지고 오랫동안 길을 헤맨 듯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있던 때였다. 너무 열심히 일하고 너무 부지런히 사는 것도 스스로에게 못할 짓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모든 것이 재미없어졌다. 이른바 '번 아웃' 상태였다.

현실에서 도망치는 데 가장 흔하게 쓰이는 방편은 잠과 술이다. 걱정과 고민거리를 잊어버리기 위해 취해 나가떨어지는 것이다. 나 역시 오래 자고 때때로 취하다가 우연히 보건소에서 주간하는 원예치료 강좌에 참여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수업에 참여해 흙과 초록과 꽃을 어루만졌는데, 그게 은근히 재미있고 즐거웠다. 내친김에 플로리스트 과정을 신청해 자격증에 도전하는 젊은 친구들 틈에 끼어 꽃다발을 만들고 꽃바구니를 꾸몄다. 꽃향기에 취하고 풀냄새에 젖어 위태로운 한 고비를 넘었다.

작년에는 창궐한 역병 속에서 '코로나 블루'가 성행했다. 건강했던 사람들도 지레 아파질 지경에 아픈 사람들은 더욱 아팠을 것이다. 해마다 개최하던 화훼축제가 무산되면서 시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상자텃밭 나눔 행사를 열었다. 얼른 신청해 상추 모종을 비롯한 베란다 텃밭 꾸밈도구 일체를 저렴한 가격에 구했다. 그때 기른 상추와 깻잎으로 한 계절이 푸르렀고 밥상도 그득했다.

자연은 모든 숨탄것의 시작이자 끝이며 인간의 영원한 벗이자 위로다. 삭막한 도시 환경 속에서 그 진리를 항상 느끼며 살기는 어렵지만 기어이 잊지 않기 위해 애쓸 일이다. 신비롭게도 계절은 어김없이 순환하고, 인간 세상의 어떤 환란에도 변함없이 스스로 그러하다. 그래서 봄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가녀린 연둣빛에 기대서라도 지난 계절의 잿빛을 지우고 싶다. 꽝꽝 얼어붙었던 땅과 아득한 절망을 뚫고 불쑥 솟아나는 새싹, 새로운 생명의 아우성.

그래도,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왔다. 부디 새봄의 난만한 빛이 고단한 모두에게 골고루 퍼지길, 촉촉한 흙을 다독이며 가만히 빌어본다.

/김별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