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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가족들이 28일 전무후무한 상속세 납부와 사회환원 계획을 공개했다. 우선 26조원이라는 이 회장의 유산 규모에 입이 떡 벌어진다. 이재용 부회장 등 유족들이 납부할 상속세 12조원은 지난해 정부 상속세 세입의 3~4배란다. 서민들에겐 비현실적인 숫자다. 사회환원 계획도 역대급이다. 감염병 예방 인프라 건설과 소아암·희귀질환 어린이 환자를 위해 1조원을 기부한다.

하지만 압도적인 현금의 향연도 '이건희 컬렉션' 기증에 비하면 초라하다. 유족들은 이 회장이 수집한 1만1천여건, 2만3천여점의 미술품을 국·공·사립 박물관, 미술관에 기증한다. 작품 면면이 경이롭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와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1393호)' 등 국가지정문화재만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이다.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장욱진은 물론 모네, 피카소, 르누아르 등 국내외 근·현대회화 거장들의 명작들이 즐비하다.

호사가들은 3조원가량이라는 감정가를 놓고 입방아를 찧지만, 당대 최고라는 '이건희 컬렉션'은 실제 시장 가격에 호환불능의 무형의 가치를 더하면 금액으로 환산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 미술계가 '이건희 컬렉션' 기증을 경악할만한 사건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가장 큰 수혜자는 지정문화재 60건을 포함해 고미술품 2만1천600여점을 기증받는 국립중앙박물관이다. 조 단위의 작품과 유물들을 거저 받아 국립의 품격과 위상이 치솟았다. 올해 소장품 구입예산 40억원으로는 꿈도 꿀 수 없던 일이다. 국내외 근·현대 거장들의 작품 1천600여점을 기증받는 국립현대미술관은 비로소 근·현대 회화의 역사성을 완성할 수 있게 됐다. 모네, 달리, 피카소, 샤갈, 르누아르, 고갱의 작품은 '덤'이라기엔 배보다 큰 배꼽일테다. 제주도의 이중섭미술관도 이번 기증으로 제대로 '이중섭미술관'이 될 모양이고 대구미술관·전남도립미술관·박수근미술관도 이름값이 가능해졌다.

박물관, 미술관만 횡재한 것이 아니다. 작품을 관람하는 국민 모두가 수혜자다. 정부가 감사 성명을 발표해도 이상하지 않다. 이건희 유족들의 '이건희 컬렉션' 기증은 80여년 삼성 역사의 모든 치부를 상쇄할만한 결단이다. 색안경을 쓰고 볼 이유가 없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