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청년들 대변 '꼰대' 간섭뿐
세습·불공정·불평등… 못 깬다면
'국가 없는 세계'로 갈 수밖에 없어
능력주의 재구축 미루면 미래 불안

그러나 예일대 로스쿨의 마코비츠 교수는 '능력주의'를 미국인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 핵심적인 요소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엘리트 세습'(2020)을 통해 능력주의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능력주의는 미국 일부 엘리트들에게 고액의 연봉과 사회적 지위를 부여했다. 하지만 성과를 위해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그 능력을 키우기 위한 교육경쟁이 더 치열해졌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엘리트와 중산층의 교육격차는 이제는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중간관리자들의 일자리가 감소하고 중산층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능력주의는 경제적 지위에서 배제된 중산층에게 삶의 좌절감을 주고 있다. 엘리트들에 의해 독점된 부와 기회, 권력과 영예에 대해 미국의 중산층들은 공공연하게 적대감을 표시하고 있다. 능력주의야말로 극단적인 불평등을 만드는 미국의 질병이자 새로운 계급과 세습의 토대가 되었다고 마코비츠는 분석한다. 그렇다면 엘리트는 행복한가. 그들도 능력 증명을 향한 끝없는 경쟁 때문에 불안감에 지쳐있다고 한다. 불안한 승리와 오만에 찬 엘리트들은 중산층이나 서민과 거리를 두고 있다. 당연히 서로 다른 성향과 관행 그리고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미국은 분리되고 있다. 연대의식도 없다. 능력주의가 결혼과 출산의 감소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통계도 제시하고 있다.
대학생들과 대화해보면 우리도 비슷하다. 부모님이 교육을 위해 행한 희생과정을 잘 알고 있고, 그렇게까지 자신의 자녀에게 교육시킬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결혼이 감소하고, 출산정책이 실패하는 이유 가운데 능력주의라는 덫이 깔려 있다. 하버드대의 샌델 교수 역시 '공정하다는 착각'(2020)에서 능력주의가 실력이 없거나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당연시하는 인식을 만들어냈다고 비판한다. 그는 능력주의가 공공선을 파괴하고, 불평등 심화와 사회분열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엘리트의 성공은 능력이 있기 때문이며, 중산층의 실업과 빈곤은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인식, 바로 그러한 인식이 사회문제에 대한 공통의 이해관계와 공존의 장을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미국보다 더 극심한 한국의 교육경쟁과 소득 격차 그리고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양산. 한국이 당면한 능력주의의 폐해를 실감한다.
경쟁이라는 이름의 능력주의, 엘리트 계층의 찬스와 부의 세습, 부의 축적을 향한 욕망과 만족하지 못하는 정신, 영끌, 똘똘한 집, 암호화폐, 주식 등. 유례없는 경쟁이 가져온 결과는 낙후공포와 도태공포이다. 막차라도 타야만 한다는 심리와 불안 요소가 우리 사회에 넘쳐나고 있다. 현재의 능력주의는 인적 자본의 착취를 정당화하고, 부당한 분배를 눈가림하기 위한 인공구조물이라고 비판하는 마코비츠의 주장을 경청할 때다. 정치권이 앞다투어 청년세대를 대변한다고 하지만 그들에게는 '꼰대'의 위선과 간섭으로 비추어질 뿐이다.
능력 지상주의가 만들어낸 세습과 불공정, 불평등과 실업, 공포와 불안을 타파하지 못한다면 '국가 없는 세계'로 가거나 '국가에 더 예속된 사회'로 갈 수밖에 없다. 전자는 공매도를 반대하고, 암호화폐에 열광하는 우리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 후자는 애국주의를 내세운 중국이나 극우주의를 내세운 유럽 정당들로 대변된다. 능력주의의 수단인 끝없는 경쟁과 '하면 된다'가 남긴 후유증을 자성할 때다. 무엇이 나의 이익인가에 집착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인류문명의 차원에서 무엇이 우리에게 좋은 것인가를 성찰하도록 해야 한다. 능력주의를 재구축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더 불안하다. 추첨, 기회, 분배, 공존 등 능력을 대체하는 새로운 기준도 찾아 나서야 할 때다.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