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에 목숨 걸던 시대가 있었다. 푸시킨은 아내 곤차로바와 염문설이 돌던 프랑스 장교 당테스와 결투를 벌여 총상을 입고 이틀 만에 사망했다. 마크 트웨인은 언론인 시절 경쟁사 언론인과의 설전 끝에 결투를 신청받자 죽을까봐 전전긍긍했다. 사격 솜씨가 형편 없었던 것이다.
모욕적인 상황에서 명예의 훼손을 인내하기란 쉽지 않다. 명예는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다. 명예를 훼손당하면 사회에서 자존감을 유지하기 힘들다. 하다못해 뒷골목 건달들도 양아치를 경멸하며 족보의 명예를 지킨다. 모욕을 당했다고 목숨을 걸고 결투를 벌였던 푸시킨의 시대는 끝난지 오래다.
모욕당한 명예를 회복하려면 법정 결투, 즉 법에 의지해야 한다. 우리 형법은 명예훼손, 사자의 명예훼손,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모욕을 모두 죄로 규정한다. 단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면 죄가 안 된다고 했다.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다. 또 반의사 불벌과 친고 원칙을 규정했다. 명예훼손과 모욕은 피해자가 참거나 무시하면 그만이라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2년 전 자신을 "북조선의 개"라고 모욕했다며 30대 청년에게 제기했던 고소를 지난 3일 취소했다. 대통령이 국민을 고소한 유례 드문 일이 뒤늦게 알려지자 난리가 났다. '대통령 욕도 못할 세상이 됐느냐'는 놀라운 반응이 대세였다. "대통령 욕해서 기분이 풀리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던 과거 발언의 진정성도 도마에 올랐다.
문 대통령이 "모욕적인 표현을 감내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국민) 지적"을 수용한 것은 늦었지만 천만다행이다. 대한민국 최고위직 공인인 대통령과 30대 청년의 법정 결투는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대통령 입장에선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닐테고, 진다면 국민 볼 면목을 잃었을테다. 명예를 회복하려다 명예를 잃을뻔 했다. 조만대장경 전과 후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회적 평판이 달라졌듯이, 공인들의 명예는 대부분 제 스스로 무너진다.
지금도 궁금한 건 국민 고소가 대통령의 진의였는지다. 푸시킨과 마크 트웨인이 결투에 목숨을 걸었던 건 주변에서 부추긴 탓도 컸다. 마크 트웨인은 결투가 무산돼 목숨을 건지고 난 뒤에는 재미 삼아 결투를 부추기는 사람들을 증오했다고 한다.
만일 대통령의 국민 고소를 부추긴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 사람들이 바로 대통령의 적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