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모아줬음에도 개혁 입법 변죽만
與 스스로 보수본색 시민 요구 배반
이제는 공동선의 새정치세력 필요
보수양당 과점 넘어설 제도개혁을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언론 평가에서 3년 연속 아시아 최고의 언론자유지수를 얻었음에도, 그 신뢰도에서는 세계주요국가에서 5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하는 것이 한국 언론의 현실이다. 언론이 품어내는 역기능은 일일이 거론할 필요도 없을 만큼 흘러넘친다. 그럼에도 그것을 제어하려는 움직임은 전무하다.
각종 개혁 입법들은 변죽만 울리고 끝났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오히려 재해사망에 면죄부를 줄 정도다. 기업의 반자본주의적 행태에 대한 개혁, 고질적인 교육 문제, 경제 불평등을 개선할 어떤 개혁도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LH 사태나 폭등하는 부동산 문제를 모르고 있었기에 시민들이 분노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당연히 해야 할 최소한의 공정성을 위한 개혁을 이 정권이 모른척하고 있기에 그에 분노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뜬금없이 이름난 정치학자란 사람이 어처구니없는 정치 분석으로 우리 사회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 지난 5월7일 최장집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 진단과 전망' 강연에서 촛불시위의 결과가 그동안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진보와 보수의 균형을 붕괴시키고, 우리 사회를 위기에 빠트렸다고 발언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 민주주의를 떠받쳐온 것은 진보와 보수의 균형이며, 이 균형이 1980년대 이래의 민주화를 가능하게 한 힘이었다. 그런데 이 정부가 촛불시위를 혁명으로 규정하고 적폐청산을 표방하면서 보수 세력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그 결과를 위기라고 설명한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보수의 과잉 대표성에 있으며 기득권의 힘이 과도하게, 그리고 완고하게 작동함으로써 왜곡된 정치·경제 지형에서 생겨난다. 촛불 시위는 그 불공정과 불평등한 체제에 분노하고, 기득권층의 공고한 담합을 깨어달라는 외침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힘을 모아주었음에도 보수 정권은 그 개혁을 머뭇거리고 그저 언저리를 건드리는 시늉만 한 것이다.
보수와 진보란 구분은 이념적이며, 구미의 정치적 지형에서 생겨난 이분법적 도식일 뿐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정치 지형을 분석하는 틀로는 전혀 타당하지 않으며,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킨다. 민주화 이후 시민들은 공동선에 기반한 공정한 사회를 원한다. 그것은 정치·경제적 힘의 편중과 과도함을 개혁해야 한다는 의식에서 비롯된다. 보수 진보라는 정치적 갈등 해소가 아니라, 이를 위한 정치 사회적 개혁이 본질이다. 그에 따른 공동선과 공정성을 강조해도 부족할 판에 위기의 본질을 왜곡하여 잘못된 구조를 정당화하고 있다. 문제는 시민들의 삶과 사람다움을 매몰시키는 정치적 독점과 경제적 이익의 편중에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중도보수와 수구보수의 갈등을 넘어, 공동선을 원하는 민주 의식을 주도할 새로운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시민성을 대변할 세력이 나타나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두 보수 정당이 과점하는 구도를 넘어설 제도 개혁이다. 정당법과 선거법 개혁 없이 이 편중된 정치지형을 바꿀 수 없다. 우리는 이 정치적 과점 구조에 인질로 잡혀있다. 그러니 지금 아프다고 외치는 사람을 가리고, 그 원인을 왜곡한다. 지금의 위기는 내면의 위기며, 맹목이 빗어낸 무지와 불안이 그 원인이다.
정치와 사회개혁은 제도와 체제 변혁에서 완성되지만 왜곡된 그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를 극복하려는 의식과 행동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시민의 변화와 변화된 시민 정신에서 변혁이 시작된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