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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정치 거목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8일 별세했다. 11대부터 16대 국회까지 6선 국회의원에 신한국당 대표, 한나라당 대표, 자유민주연합 총재와 내무부 장관, 국무총리에 이르기까지 정계와 관계에서 일군 화려한 이력이 보여주듯이, 한 시대 경기도 정치를 대표했던 '인물'이었다.

1988년 새내기 기자로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출입하면서 처음 마주한 이한동은 '신언서판(身言書判)'의 전형적 정치인이었다. 거구임에도 반듯한 체형은 균형이 잡혔고, 걸걸한 목소리는 조리있는 언변을 따스한 인정으로 감쌌다. 그는 설득할 줄 알고 양보할 줄 아는 정치인이었다. 야당과 일이 꼬일 때마다 이한동이 원내협상을 진두지휘하는 원내총무에 발탁된 이유다.

1989년 12월31일 전두환의 국회증언은 그의 정치인생에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다. 민정당 원내총무로서 백담사의 전두환을 설득해 국회 증언대에 세웠다. 통일민주당의 노무현은 명패를 던지고 평화민주당의 이철용은 "살인마 전두환"을 절규했다. 대의기관인 국회의 전두환 심판으로 한 해를 마치고 곧바로 이어진 3당 합당과 민자당의 출현으로 정치지형은 안정화된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의 집권여당에서 원내총무와 당 대표를 지낸 그는 극단적인 지역갈등 정치의 탈출구를 제3지역에서 찾았다. 수도권과 충청권의 합리적인 중도 민심을 정치의 주류로 만들어 통합의 정치 공간을 열고자 했다. 역동정치론, 국민통합론을 거쳐 완성된 '중부권 대망론'으로 1997년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다. 하지만 이인제에 뒤진 3위로 분루를 삼켰고, DJP연합정권의 국무총리로 정치인생의 정점을 찍은 뒤 2004년 정계를 은퇴했다.

지금 정치는 이한동 시절의 정치와는 다르고도 같다. 여야가 낮엔 싸우느라 얼굴을 붉히고, 밤엔 문제를 풀기 위해 한 잔 술로 얼굴이 붉어졌던 낭만적 협치의 문화는 사라졌다. 반면에 도로 영남당, 다시 호남당이라는 지역 편파적인 정치구조는 여전하다. 합리적인 수도권 민심은 여전히 비주류로 머물고, 수도권 뜨내기 의원들이 균형발전론을 방관하는 동안 정부와 공공기관들은 전국으로 흩어졌다.

우리 정치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며 중도적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이한동의 중부권 대망론은 정치적 숙제로 남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