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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꽃 뒤엔 냉이 열매가 보인다

작은 하트 모양이다 이걸 쉰 해 만에 알다니

봄날 냉이무침이나 냉잇국만 먹을 줄 알던 나,

잘 익은 열매 속 씨앗은 흔들면 간지러운 옹알이가 들려온다

어딜 그렇게 쏘다니다 이제사 돌아왔니

아기와 어머니가 눈을 맞추듯이

서로 보는 일 하나로 가지 못할 곳이 없는 봄날

쉰내 나는 쉰에도 여지는 있다

나는 훗날 냉이보다 더 낮아져서,

냉이뿌리 아래로 내려가서

키 작은 냉이를 무등이라도 태우듯

들어 올릴 수 있을까 //

그때, 봄은 오고 또 와도 새

봄이겠다 //

손택수(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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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사물의 형태는 시선이 머무는 심상에 의해 달라진다. 같은 사물일지라도 다르게 지각되는 것은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응시하는 주체에게 있는 것. 주체는 보고 싶은 대로 사물을 보거나, 사물이 보여주는 대로 대상을 인식하고자 한다. 보고 싶은 대로 사물을 보는 사람은 이미 고정된 자신만의 세계에 대상을 편성시킨다는 점에서 새로움을 포착하기 힘들다. 하지만 사물이 보여주는 대로 인식하는 사람은 사물이 가진 다른 면모를 보게 되는 것. 그것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움에 대한 발견이다. '냉이꽃 뒤엔 냉이 열매'를 보고 이를 '하트 모양'으로 인식하는 것은 냉이꽃이 보여주는 대로 보는 것. 비로소 냉이꽃을 냉이꽃이 아닌 '하트 모양'을 가진 그 무엇으로 바라보는 것. 새로움의 시작이다. 따라서 그 '열매 속 씨앗에서 옹알이'가 들려오고 '아기와 어머니'가 눈을 맞출 수 있는 것. '당신께 모든 것을 드립니다'라는 꽃말을 가진 냉이꽃은 5~6월 '서로 보는 일 하나로 가지 못할 곳이 없는 봄날' 개화한다. '키 작은 냉이를 무등이라도 태우듯 들어 올릴 수' 있는 힘은 바로 정해진 관념을 버리는 데서 온다. 그렇다면 언제나 '봄은 오고 또 와도 '새봄''으로 남는 것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