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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수원미술전시관이 초대형 전시회를 예고했다. 나혜석, 김관호, 이중섭, 박수근, 이인성 등 한국 근대미술 거장 13명의 미공개 작품 20점을 최초로 공개하는 전시였다. 소장자 홍모씨는 선대부터 수집했다 주장했지만, 한국화랑협회의 진품 감정서는 없었다.

곧바로 위작 시비가 일었다. 진품 공인이 없는 위작을 공공미술관에서 전시할 수 있느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작가의 사인 위조를 주장하는 후손도 등장했다. 나혜석기념사업회와 이인성기념사업회는 전시 취소와 도록 회수를 요구했다. 당시 경원대 교수였던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위품을 진품으로 보증서 준 꼴"이라고 개탄했다. 결국 수원미술전시관은 개막 당일 '한국근대서양화 미공개작품전'을 취소했다. 지역 공공미술관의 열악한 수준을 보여준 역대급 스캔들의 전말이다. 홍씨와 그의 소장품들은 지금껏 종적이 묘연하다.

이번엔 진짜가 나타났다. 삼성이 국가에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이다. 국보급 고서화와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근대미술 거장들과 해외 거장들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됐다. 이중섭미술관과 박수근미술관도 작가의 진품을 기증받는 행운을 누렸다. 만일 수원에 나혜석미술관이 있었다면 그녀의 '화녕전작약'을 기증받았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나혜석'이라는 수원문화의 아이콘은 더욱 빛났을테고, '화녕전작약'으로 문화유산 화성의 스토리텔링은 한결 풍부해졌을테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은 이름만큼 건조하다.

지방자치단체들의 '이건희 미술관'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영남 지자체들은 삼성 가문의 고향 연고를 앞세운다. 고향 연줄에서 밀린 수원시는 이목동 이건희 묘지와 삼성전자를, 용인시는 이병철 묘지와 호암미술관을 내세워 유치전에 가세했다. 하나같이 치졸한 명분이다. 이건희 컬렉션을 보전할 문화적 비전과 예술적 감수성은 언급조차 없다. 껍데기뿐인 시립미술관을 국립으로 출연하겠다면 차라리 설득력이 있을테다.

이건희 미술관은 대통령의 언급만 있을 뿐 정부 구상은 싹도 트지 않았다. 실체 없는 유치 경쟁에 이 난리이니, 실제 공모라도 들어가면 지역을 대리한 정치 전쟁이 벌어질 판이다. 20년 전 수원미술전시관은 '최초'라는 유혹에 넘어가 황당한 위작 전시회를 감행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문화적 안목이 그 시절에 비해 나아졌는지, 자신할 수 없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