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송 까다로운곳 문앞까지 전담
'당일 긴급'은 100원 비싸 560원
환전은 다음달 10일이후에 가능
고용한 기사 '일당 3분의1' 쓴셈
'당일긴급/성남○○아파트/560원·100개'. 또 콜이 떴다. 이번엔 560원짜리다.
다른 사람이 채갈세라 재빨리 수락하니 2분 만에 관리자에게 전화가 온다. "택배일 경험은 있으세요?" 경험이 없고, 여자고, 나이가 어리다고 하니 의뢰인을 직접 연결해 준다. 의뢰인은 바로 이 단지에 택배를 배송하는 '배달기사'다.
코로나19로 택배 물량이 폭증하면서 바쁜 날 배달기사들이 자체적으로 일손을 구하는 '용차' 아르바이트에 이어 문앞 배달을 전담하는 '바통' 아르바이트까지 나왔다.
지상 배송이 까다로운 아파트에서 지하주차장~문앞 배달만 대행하는 신종 아르바이트다. 동명의 전용앱으로 매칭되는데, 플랫폼 노동자인 택배 기사들이 또다시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일을 대행할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이중 플랫폼 노동'인 셈이어서 플랫폼 종속 현상이 한층 심해졌다는 평이다.
16일 '바통' 앱에 아르바이트생으로 직접 등록해봤다. 지역을 성남시의 한 동네로 설정하니 1시간 간격으로 콜 3건이 떴다. 이 중 ○○아파트는 일이 갑자기 몰려서 SOS를 치는 '당일긴급' 건이어서 단가가 100원가량 더 비쌌다.
콜을 넣은 기사 A씨는 "100건을 다 완료해야만 퇴근할 수 있는데 괜찮겠느냐"며 손수레가 지급되지 않으니 꼭 가져오라고 일러줬다. 이렇게 채용이 완료됐다.
일은 A씨의 안내를 받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출입카드를 받아오는 것에서 시작됐다.
A씨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이었는데 아파트 정문에서 관리사무소까지 걸어가는 잠깐 동안에도 이곳저곳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는 "고객 항의가 올 수 있으니 배달이 완료될 때마다 인증숏을 꼭 보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카드를 찍고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니 인터넷 쇼핑몰 택배 50여 개가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이를 4개 동별로 분류하고 다시 1·2라인과 3·4라인으로 나눴다. 낮은 층부터 높은 층까지 역순으로 쌓아 손수레에 실으면 준비가 끝난다.
첫 동의 배송지는 6곳, 물건은 8개였다. 완료하니 40분이 흘렀다. 100개를 언제 채울지 눈앞이 깜깜해졌다. 3번째 동을 배송할 땐 자연스레 지하 1층 출발지에서부터 배송 층수를 되새김하게 됐다. '2·8·13·14층, 2·8·13·14층…'.
'초보자는 6시간 일해도 100건을 채우기 힘들 것'이라는 관리자의 말이 비로소 실감났다. 이후 업무는 속도전이었다. 하도 서두르다 보니 인증숏을 빼먹기도, 택배 물건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어쩌다 2개를 주문한 집이 나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이날 3시간 동안 일하고 받은 돈은 2만8천원. 하지만 돈이 당장 손에 쥐어지진 않았다. 대신 중개플랫폼의 앱 캐시 2만8천점이 적립됐다. 환전은 다음 달 10일 이후 가능하다.
기자를 고용한 기사 A씨는 이날 바통 급여로만 하루 일당의 3분의1을 썼다. 그는 "정해진 물량을 꼭 채워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한편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대형 택배사 4곳 1천862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산업안전보건감독 및 업무여건 실태조사'에 따르면 배달기사 5명 중 1명은 '성수기에 대체인력을 고용한다'고 답했다.
/이여진기자 aftershoc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