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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는 문어와 주꾸미의 사촌격 연체동물이다. 빨판이 달린 여덟 개 다리에 민머리가 자유자재로 변형한다. 뼈도 없이 흐물거리는 촉감에 끈적한 진액으로 무장해 함부로 만질 수 없다. 외국인들이 혐오하는 대표 한국 음식이다. 영화 '올드 보이'에서 배우 최민식이 산낙지를 통째 먹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거나 역겨웠다는 외국인이 많다.

갯벌에서 게와 조개류를 잡아먹고 사는 낙지의 주산지는 전남 다도해 일원이다. 국내산 낙지 열 마리 중 여섯 마리가 이 지역에서 난다. 깊이가 최대 2m나 되는 구멍을 파고 은신하기에 어지간한 꾼이 아니면 포획하기 만만치 않다. 낱마리로 잡아야 하고, 계절별 수확량 편차가 크다. 초여름 산란기엔 2개월 동안 포획이 금지돼 품귀 현상이 반복된다.

'쓰러진 소도 일으킨다'는 속설이 말하듯 보양식으로 대접받는다. 타우린과 단백질이 풍부해 환자와 임산부에 좋다.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하거나 3~5㎝ 크기로 잘라 산 채로 먹는다. 크기가 작고 발이 가는 세발낙지는 통으로 먹는다. 물량이 적은 탓에 산지가격도 만만치 않다. 마리당 2만원은 줘야 산 놈을 먹을 수 있다. 소비자들은 대체재인 중국산이라도 가격 부담이 적지 않다고 불평한다. 왜 이런가 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6일 인천수산물수출입협회의 공정거래법 위반행위를 적발해 과징금 1억1천500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국산 낙지 수입업체들이 모인 협회가 산낙지 단가 하락을 막으려 도매가와 수입 횟수를 통제한 혐의다. 협회는 2017~2018년 사이 회원사들의 산낙지 수입을 금지하기도 했다. 중국 업체의 가격 인상 요구에 완력으로 맞선 것이다. 부당한 담합과 가격 조정 횡포에도 위세에 눌린 국내유통업체들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수입업체들이 결성한 협회가 유통시장을 교란해 주머니를 채웠다. 가격 통제와 물량 담합으로 인한 피해는 온전히 소비자 몫이 됐다. 협회가 중국산 산낙지 수입시장을 장악하면서 비싼 가격이 당연시됐다. 서해안 관광지마다 한 집 건너인 조개구이 식당들도 중국산을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가격 짬짜미가 산낙지에만 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전국 수산물시장이 죄다 같은 품목을 비슷한 가격대에 파는 것도 수상쩍다. 농·수산물 유통 전반에 대한 불신이 더 커지게 됐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