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지도이념으로 삼은 고려와 달리 유교를 숭상한 조선시대는 매장문화가 성행했다. 풍수학에서 꼽는 명당(明堂)자리에 조상을 모셔야 후대에 발복(發福)한다는 믿음이 강했다. 흔히 알려진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등 명당 종류만 27가지나 된다. 장례문화도 성역이 돼 1년 상(喪)이냐 3년 상이냐 당쟁으로 화를 불렀다.
영화 '명당'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부친 남연군 묘 이야기를 다룬다. 풍수사 정만인은 대원군에게 가야산의 2대(代) 천자지지(天子之地)와 오서산의 만대영화지지(万代榮華之地) 중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고 묻는다. 대원군은 천자지지를 택해 아버지를 이장하고 7년 뒤 둘째 아들을 얻었는데, 그가 고종이었다. 정사와 야사가 혼재하나, 묘 이장은 역사적 사실이다.
일본이 서구화에 나선 1800년대 중반 이후에도 조선은 쇄국의 문을 굳게 닫았다. 통상을 요구하는 프랑스와 미국에 맞서 무력충돌을 했다.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 사건이다. 이 와중에 독일 상인 오페르트 일당은 대담하게도 1868년 남연군 묘를 파헤쳐 매장품을 훔치려 했다. 단단한 석회질에 막혀 도굴에는 실패했으나 조상묘를 중시하던 조선사회에 충격을 줬고, 척화비 건립의 빌미가 됐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조부(祖父)의 묘역이 훼손됐다는 주장이 언론에 의해 제기됐다. 봉분 위에는 인분, 앞에는 작은 구덩이를 판 뒤 식칼과 부적, 여성의 것으로 추정되는 1m 정도의 머리카락 뭉치를 넣고 다시 덮은 흔적이 남았다고 한다. 친척이 발견했다는데, 경찰은 신고된 사실이 없다며 내사설 보도를 부인했다.
조국 법무장관에 대한 수사가 한창이던 2019년 9월, 트위터에 '윤석열 저주 인형 사진'이 게재됐다. 700여명이 같은 사진을 올렸는데, 인형 전신에 빨간 핀 10개를 꽂은 모습을 담았다. 노트 한 장을 빨간 펜으로 '윤석열'이라 쓰고 저주하는 글을 적어 인증사진을 올린 이용자도 있었다.
증오를 넘어선 저주는 범죄화할 개연성이 높다. 싫고 거북한 감정이 임계치를 넘어서면 이성을 잃게 된다. 때론 주술적 수단으로 상대방을 망가뜨리려 한다. 특히 조상의 묘를 훼손하는 행위는 패륜에 버금가는 범죄다. 멀쩡한 후손들을 불효자로 만들고, 죄책감에 시달리게 한다. 불구대천지원수라도 해서는 아니 될 극악한 행위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