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서관 매개 DNA 바꾸는 '전주'
日 다케오시도 친근공간으로 특화
지역 심장역할 랜드마크 될 수 있어
지자체들 앞다퉈 건립하는 이유다
지난 주말 별렀던 '전주 꽃심도서관'에 다녀왔다. '꽃심도서관'은 도서관에서는 조용히 그리고 책만 읽는다는 고정관념부터 확 바꿨다. 흥미로운 책 놀이터였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유아, 청소년, 성인들까지 책과 함께 뒹구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전주시가 도서관을 새롭게 주목한 건 책과 도서관이 지닌 잠재력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순천시가 '기적의 도서관'을 계기로 활력을 찾았듯 전주시 또한 도서관을 통해 모멘텀을 마련하겠다는 의도다.
전주시 인구는 65만명으로 지방도시치곤 비교적 크다. 그렇다고 지방도시마다 겪는 정체는 피할 수 없다. 전주시는 성장 동력으로 도서관을 택했다. 대부분 지자체가 기업유치에 열을 올리는 현실을 감안하면 역발상이다. 획일적 성장 방식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고민의 결과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라며 회의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우선 청사 로비부터 과감하게 도서관으로 뜯어고쳤다. 시간이 흐르자 고인 물에 물고기 깃들 듯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꽃심도서관' 3층 '우주로 1216'은 12세에서 16세까지만 이용이 제한된다. 어린이도, 그렇다고 성인도 아닌 어정쩡한 1216세대만을 위한 전용공간이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해방구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독서, 놀이, 강의, 대화를 통해 마음껏 창의력을 키운다. 개관 이후 수많은 이들이 다녀갔다. 전주시는 '꽃심도서관'을 성공 사례로 나머지 10개 시립도서관도 리뉴얼 중이다. 모든 도서관을 책과 친숙한 놀이터로 바꾸는 게 목표다.
테마 도서관도 특색 있다. 호수, 길, 정원, 예술, 시를 주제로 한 도서관이다. 호수를 끼고 길이 270m 도서관이 들어선다. 길쭉한 도서관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책 읽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설렌다. 무형유산전당 인근에는 길(道) 전문도서관이 들어선다. 신정일, 서명숙, 한비야 등 걷기에 미친 이들이 쓴 책을 이곳에 모으고 시민들은 걷기 강좌를 통해 이들과 만난다. 덕진공원에 정원(庭園) 전문도서관, 서학동 예술마을에 예술 전문도서관도 들어선다. 내년 초에는 시(詩) 전문도서관도 개관한다. 또 책 쓰는 도서관, 책 만드는 도서관도 구상 중이다. 동네 책방끼리 연대도 활발하다. 이렇게 전주는 책과 도서관을 매개로 DNA를 바꿔가는 중이다.
일본 다케오(武雄)시도 도서관으로 떴다. 다케오는 인구 5만명에 불과한 특별할 것 없는 소도시다. 이곳에서 다케오 도서관은 핫플레이스다. 다케오시 또한 엄숙주의를 버리고 친근한 도서관으로 특화했다. 책 읽기는 물론 차 마시고 수다도 떨 수 있다. 내부 공간도 이용자 중심으로 바꿨다. 1년 365일 문을 연다. 그러자 연간 100만명이 다녀가면서 지역경제에 효자 노릇을 한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이 몰리면서 지방소멸 위기를 떨쳐냈다.
지난 22일 경기 남양주시 '정약용도서관'이 개관 1주년을 맞았다. 지난 1년 동안 무려 40만명이 다녀갔다. 도서관이 책 읽는 공간에서 그치지 않고 지역의 심장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도서관을 건립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문을 연 강원 원주 '미리내도서관'(2021년 3월)과 경기 고양 '별꿈도서관'(2020년 12월)도 대박을 쳤다. 얼마든지 지방 도서관들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못지않은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
빌 게이츠는 '오늘의 나를 만든 건 유년시절을 보낸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라고 했다. 지방도시 도서관마다 수많은 빌 게이츠가 자란다면 지역도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 나아가 공동체를 풍성하게 하고 지방소멸에 맞서는 대안으로 책과 도서관은 답이 되기에 충분하다. 괴테는 '만 권의 책을 읽었지만 내 몸은 여전히 서럽다'고 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책을 읽고 도서관을 찾는다. 책과 도서관이 시민과 지역을 변화시킨다면 과장일까.
/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前 국회 부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