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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0월5일자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가 '한국: 잊혀진 전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이후 미국에서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은 한국전쟁의 별칭이 됐다.

한국전쟁은 미군 전사자만 4만명에 달하고 자유진영 대 공산진영 최초의 무력충돌이었다. 하지만 2차대전에 질린 미국 국민은 모르는 나라 '한국'의 전쟁에 관심이 없었다. 트루먼 행정부도 만주 핵공격을 주장한 맥아더를 해임하고 서둘러 휴전한 전쟁을 업적으로 자랑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전쟁은 2차대전의 영광과 베트남전의 상처 사이에서 더욱 조용히 잊혀졌다.

한·미 정상회담이 잊혀진 전쟁인 한국전쟁을 전격적으로 소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워싱턴DC에서 열린 한국전 전사자 '추모의 벽' 착공식에 참여했다. 추모의 벽은 높이 1m, 둘레 50m의 화강암 벽에 미군 3만6천595명, 카투사 7천174명의 한국전쟁 전사자 이름을 새겨 2022년 완공된다. 잊혀진 전쟁의 무명용사들이 70여년 만에 이름으로 귀환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미국과 한국은 고통스러운 역사도 영광스러운 순간도 항상 함께해 왔다"는 말을 남겼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94세의 한국전 참전 노병인 랠프 퍼켓 주니어 퇴역 대령에게 미군 최고의 영예인 명예훈장을 수여했다. 수여식에는 문 대통령이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 함께했다. 퍼켓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병력으로 중공군의 인해전술로부터 고지를 지켜낸 전쟁 영웅이다.

기념촬영 장면이 감동적이다. 휠체어에 앉은 퍼켓 대령 옆에 고령의 바이든이 무릎 꿇고 앉자 문 대통령도 서슴없이 반대편에서 무릎을 꿇었다. 자유와 민주를 지켜낸 영웅을 향한 한·미 정상들의 경의, 한·미동맹의 가치를 이보다 잘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 또 나올까 싶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혈맹의 뿌리를 재확인하는 성과를 남겼다. 그동안 한·미동맹의 균열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국전쟁의 기억으로 균열의 틈을 메웠다.

'전쟁의 종식은 추모에서 시작한다'.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 '한국 묵상의 벤치'에 새겨진 문구다. 한·미동맹을 이어주는 '한국전쟁'이 정작 우리에게서 잊혀지고 있는 건 아닌지 마음이 번거로운 건 왜일까.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