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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극단 아토의 배리어프리 공연 '두향연가'의 한 장면.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지난 25일 오후 인천의 한 복지관 4층에 마련된 임시 공연장에선 인천지역 극단 '아토'가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이날 객석에는 50여 명의 관객이 임시로 마련된 의자에 앉아서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극단 아토의 '두향연가'는 1548년 48세의 나이로 단양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과 관기 '두향'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곧 공연 시작 시각이 됐고 배우의 작품소개로 막이 올랐다. 하지만 이상한 풍경이 펼쳐졌다. 공연이 시작됐지만, 객석의 관객 상당수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심지어 무대를 보지 않고 눈을 감고 있거나, 시선이 땅바닥을 향하거나 무대가 아닌 곳을 향한 관객도 많았다.

평소와 달랐던 건 관객뿐이 아니었다. 배우들의 움직임도 여느 작품과 사뭇 달랐는데, 2명의 주연 배우들조차 무대에서 움직임이 거의 없었고, 나머지 배우들은 모두 무대에 앉은 상태로 대사를 읊었다.

통상적인 연극 작품이라면 관객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서 무대나 소품 등 시각적인 부분에도 신경을 쓰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미술'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은 작품처럼 보였다. 심지어 빨래를 하거나 술판을 벌이는 장면에서도 오직 배우가 입으로 만들어내는 '대사'가 전부였다.

반면 작품에서 '소리'는 매우 중요하게 다뤄졌다. 극에선 3명의 연주자가 직접 연주를 맡았고, 거의 앉아서 입으로만 연기를 펼치던 배우들도 각종 소도구를 이용해 새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 등의 효과음을 직접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사실 이 작품은 장애·비장애 구분 없이 관객 모두가 똑같이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된 '배리어 프리' 공연이다. 청각을 위주로 진행되는 '소리 집중극'이다. 이날 공연이 열린 곳은 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 4층 강당에 마련된 임시 무대였고, 관객은 대부분 시각장애인이었다.

이 상황을 모르는 이들이 겉으로 보이는 관객 관람 태도만 두고 보자면 작품 따위에 전혀 관심이 없고, 배우들을 존중하지 않는 무례한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비장애인 관객 못지 않게 극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금세 확인할 수 있었다.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목소리와 작은 효과음 하나라도 놓칠까 극에 집중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눈을 감고 있거나, 고개를 땅에 숙이고 있었음에도 웃고, 울고, 박수를 치며 배우들의 연기에 화답했다.

시각장애인 최영훈(69·인천 서구)씨는 "공연이라는 것을 경험한 지 10년도 더 넘은 것 같다"면서 "모처럼 좋은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던 정말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김유미 극단 아토 공동대표는 "소리만으로 이뤄진 작품이지만 생생한 소리를 들려줘 관객이 각자 서로 다른 그림을 그려나가는 재미를 주려고 기획했다"면서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자극적인 환경 속에서 잃어버린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극단 아토의 '두향연가'는 오는 28일 오후 7시30분과 29일 오후 3시 인천 남동소래아트홀 소극장에서도 공연된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