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다름'을 소통하는 그의 꿈
오래전 인권위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
그런데 이 법은 아직도 보류 상태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기본권인데…
"나는 지하철 탐험가 성찬성우입니다"로 시작한 첫 번째 극 '남극으로 가는 지하철'은 자폐성 장애가 있는 '성찬'의 마음을 그린 동화이자 판타지 극이었다. 성찬성우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는 '성찬'은 지하철을 좋아한다. "지하철은 길고 빠릅니다. 사람도 많이 태울 수 있고, 시간 약속도 잘 지킵니다. 벨을 누르지 않아도 문을 열어 줍니다. 지하철은 나처럼 착합니다." '성찬'은 사람들의 행동과 '다르게'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치지 않아도 지하철은 역마다 문이 자동으로 열리기 때문에 좋아한다. 남극으로 가서 인간과 '다르게' 생긴 펭귄을 만나 함께 놀고 대화를 나누어서 기쁜 '성찬'은 늘 자신의 '다름'을, 그것으로 인해 생기는 불편함을 결코 슬퍼하거나 남다르다 여기지 않는 어머니에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펭귄 미소를 살짝 지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다름'을 표현하고 행동하고 있을 뿐인 '성찬'은 세상과 소통하고 함께 어우러지기를 꿈꾸면서 그림책을 냈다. 그 그림책을 연극으로 만든 '극단 노뜰'의 배우들은 17명의 관람객에게 '성찬'의 꿈을 성큼 건넸고, 우리는 이를 덥석 받았다.
요즘 화두가 되는 법이 하나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였다. 독일에서 '일반동등대우법'이 제정된 해와 같은 해이다. 그런데 17대 국회에서 발의된 이 법이 아직도 보류상태이다. '모든 사회구성원은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대원칙에 대해 대다수 사람이 동의하는 2021년 오늘, 자신 있게 '우리나라에는 더 이상 차별 따위는 없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상에서의 차별적 언어나 행동에 대해 '옛날에도 그랬어'라고 하기에는 삶의 환경과 조건, 가치,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차별과 역차별, 존엄, 혐오 등의 개념들이 구체적인 확인의 근거도 없이 각자의 도덕성을 입증하는 도구 정도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쉽다.
지하철을 타고 남극 여행의 꿈을 꾸는 '성찬'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의해 차별을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장애 차별만 규율하고 있는 차별적인 보장으로 인해 '상상에는 장애가 없고, 더불어 사는 세상에는 편견이 없다'고 고함쳐 봐도 사람들의 날 선 눈빛은 피할 길이 없다. '남녀고용평등법'은 또 어떠한가. 고용 영역의 성차별만을 다룸으로써 포괄적인 차별, 다시 말해 인종이나 민족,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 그리고 출신 지역, 종교, 사상, 학력, 병력 등 넓은 범위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차별 사유에 대해 정의하고 이를 구제할 수 있는 실질적 수단이 되는 법이 없다.
법이란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되는 사회 규범이자 권리보호의 역할을 하며, 우리가 함께 지키자고 만든 규칙이다. '정의의 실현'과 '공공복리 실현'이 법의 목적이라면,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리한 대우를 겪거나 괴롭힘과 성희롱을 당하고 싶은 사람이 이 세상에 없어야 한다. 법을 제정한다고 세상이 갑자기 바뀌지도 않을 텐데 쓸데없는 것에 힘을 빼는 것이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투쟁하는 자는 패배할 수도 있다. 그러나 투쟁하지 않는 자는 이미 패배했다'고 했다. 하물며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것이며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인간의 기본권이라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함이 마땅한가.
/손경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