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곧 산업화 前보다 1.5도↑ 전망
개항기 조선지식인의 부국강병 과학
사회진화론 도구적 이성 단적드러내
지금은 달라져… 한국서 첫P4G 기대

환경문제 측면에서 한국은 낙후된 수준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바닷속 미세플라스틱 오염 정도는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해 있으며, 2020년 기준 세계 환경위기시각이 9시47분인데 비해 우리는 9시56분을 가리키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다. 덧붙이건대 환경위기시계는 12시에 가까울수록 환경 파괴의 심각성이 크다는 것을 나타내며, 2017년 한국의 환경위기시각은 9시9분이었다. 한국의 환경 상황이 그만큼 급속하게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환경민주주의는 세계 71개국 가운데 35위라고 한다.
이즈음에 이르러 개항기에 벌어졌던 조선 지식인들의 반복되었던 노력을 떠올리게 된다. 서구 열강의 등장에 위협을 느낀 지식인들은 서구 국가가 부강한 까닭을 따져 물었다. 그리고는 저들의 학문이 과학이라는 데서 답을 찾았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만물을 내는 것은 천지이지만, 천지자연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의 재력(才力)"인 바, 여기서의 재주와 능력이 과학이며, 과학을 키워야 우리도 부강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 제출된 것이다.('한성순보', 1884)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권 상실의 전 단계인 을사늑약(1905)을 겪고 난 뒤에서 비슷한 주장이 반복되고 있는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천혜의 산물을 취하여 여기에 인위적인 노력을 가하는" 노력이 요구되는 바, 이때의 인위적인 노력이란 과학을 가리킴에 틀림이 없다.('서북학회월보' 7호, 1908)
과학으로 무장하여 부국강병에 나서자는 주장이 어째서 당대 조선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했을까. 과학의 도입이란 세계관의 교체를 동반해야 가능해지는 결코 만만치 않은 요구였기 때문이다. 유·불·도의 세계관에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따름이다. 모든 각각의 존재는 자연 가운데서 생명을 얻었다가 결국 자연 속으로 돌아가며, 각각의 존재들은 서로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입각해 있다. 인간이 다른 존재보다 우월한 까닭은 그러한 관계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며, 쉼없이 변화하는 운동으로서의 자연에 다가설 가능성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물아일체(物我一體)라는 용어가 이를 드러내고 있다.
반면 서구화(근대화)를 주장하는 이들이 내세웠던 과학이란 자연을 대상화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자연 바깥으로 뛰쳐나온 인간이 자연을 조작 대상으로 설정할 수 있을 때 가능해지는 세계관(사유 유형)이라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그런데 산에 피는 저 꽃은, 산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는 저 새는, 길들여진 개나 고양이는 우리 인간과 같은 이성을 가지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같은 인간이라 하더라도 인종에 따라 이성의 진화는 달리 성취된 듯하니 백인종이 흑인종과 황인종 위에 군림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이러한 내용의 '사회진화론'은 도구적 이성에 입각한 세계관의 방향성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조선 말기 급박했던 상황을 돌아본다면 과학을 강조하였던 지식인들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상황은 그때와 크게 달라졌다. 달라진 상황에서 우리는 결단해야 한다. 지난 29일 대통령 직속 2050탄소중립위원회가 출범했고,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기후환경정상회의인 P4G(녹색성장과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가 30일부터 이틀 동안 열리고 있다. 모쪼록 이번의 조직 출범과 행사가 공허한 선언만 남발해온 그간의 행태를 지양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다.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민교협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