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수구 기존 보수들과 많이 달라
사람들 촛불정부의 '민주개혁' 실망
양대 정당 기대감 없는 세력 돼버려
이제 국민들 변화할 사람에게 의지

예비경선을 1위로 통과한 그가 본선에서도 그 기세를 더하여 고리타분한 보수정당의 수장으로 자리 잡는다면 국민들의 정치적 효능감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한 언론인은 '이준석 현상' 때문에 '그 당이 재미있어졌다'고 말한다. '수구꼴통'으로 불렸던 정당이 재미있고, 역동적이고, 기대마저 드는 정당이 된 것이다. 이준석이라면 대통령과도 기념사진 이상의 뭔가를 만들어내고, 야권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들이 국민의힘 입당을 마냥 주저하지 않으리라 지적한다. 국회의원 한 번 당선된 적이 없어서 '구상유취'한 '정치적 미성년자'라고 하기엔 그만큼 모든 사안에 대해 일관성도 있고 구체적 경험적 대안도 있는 그리고 누구와도 토론을 마다하지 않는 정치인을 많이 보지는 못했다. 너무 편파적이어서 공정한 대선후보 경선관리를 하지 못할 거라 우려하기도 하지만, 진중권이나 박근혜를 대하는 그의 자세에서 불공정성을 찾기 어렵다. 너무 젊어서 국회의원들이 대표로 모시기는 어려워 당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한다. 나이든 대표 밑에서도 별 존재감을 보이지 않았던 직업국회의원들이 굳이 나서서 할 일도 없다. 가끔 그에게 '가볍고 싸가지 없는' 우파 유시민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재능과 언변이 뛰어나 말하기를 즐겨할 뿐, 정말 '싸가지 없는' 토론 상대자를 사회자에게 떠넘기는 수준의 예의를 보여주곤 했다.
정치인으로서 그에게 사람들은 무슨 기대를 할까? 그는 일단 머리가 좋고 말을 잘하고 모든 사안과 토론에 대해 개방적이다. 엄격하고 근엄하며 진지하지만 사람 사귀기에 서툴고 거짓말도 능숙하고 자기반성도 없는 전형적인 정치인들과는 달라 보인다. 자기주장과 논거를 열심히 말하지만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구체적인 현실을 인식하는 수준이 높다. 그렇다고 여야를 불문하고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남의 말에 귀를 닫으며, 심지어 도덕적 우월감에 절어 있는 꼰대로 보이지는 않는다. 보수(保守)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언제라도 보수(補修)한다는 점에서 마냥 수구(守舊)인 기존 보수들과는 참 다르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그런 가능성을 보는 것 같다. 이준석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정치인들에게 이끌려온 국민의힘이 아무런 비전도 없는 힘없는 야당으로 전락해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준석의 그러한 모습은 더 이상 약점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나는 정치인 이준석보다는 정치적 상황이 '이준석 현상'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그간 우리 정치에서는 '노무현 현상', '안철수 현상', '윤석열 현상' 등이 떠올랐었다. 노무현은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성공적으로 직을 수행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안철수는 실패했지만 아직도 약간의 기대를 받고 있으며, 윤석열은 차기 대통령의 가능성이 높은 인물로 거론되고 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구세주의 도래를 꿈꾸듯이 나타난 이른바 '○○○ 현상'은 이번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
어쨌든 사람들은 2016년 탄핵촛불집회를 통하여 권위주의적 권력구조와 사회경제적 양극화로 얼룩진 보수세력에 대해 기대를 버렸다. 촛불정부라 참칭했던 현 정부가 정치사회적 분열과 경제정책을 포함한 정책적 무능 그리고 도덕적 타락에 있어서 역대 어느 정권에도 뒤지지 않는 점에서 소위 '민주개혁세력'에 대한 기대도 접어버렸다. 양대 정당세력은 정치적으로도 정책적으로도 심지어 규범적으로도 이제는 기대하기 힘든 세력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들이 90% 이상의 국민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받는 마당에 의지할 만한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렵다.
이제 국민들은 변화할 여지가 있는 외곽의 사람과 세력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노무현, 안철수, 윤석열에게 기대했거나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 가능성을 믿지는 않지만 그나마 기존 정치인들과 외관부터 다른 사람에게 아직 남은 희망을 걸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기득권 정치계급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미숙하지만 친절하게 뭔가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요구하는 젊은 세대에 공감하는 사람들에게 얼마 남지 않은 기대를 걸고 있는지 모른다. 또, 그러한 민심이 당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야당의 당내 변화가 다른 당의 변화를 낳고, 국민에게 또다른 희망을 주고, 대통령선거와 권력 향방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정치가 국민의 삶을 한껏 고양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