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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때리고 감금하면서 이 장사 하냐구. 지금은 21세기야, 21세기!" 2004년 9월23일 자정. 수원역 집창촌을 찾은 경인일보 기자에게 한 포주가 내뱉은 볼멘소리다. 이날부터 시행된 성매매특별법으로 집창촌 업소들은 된서리를 맞았다. 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격렬한 찬반 논란이 있었다. 성매매를 근절하자는 찬성론은 인권적 당위였다. 오히려 성매매를 확산시키는 풍선효과가 우려된다는 반대론은 현실적 고민이었다.

성매매특별법 시행 17년이 지난 지금 유감스럽게도 반대론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성매매 강요자와 성매매 목적 인신매매자를 징역형에 처하고 성매매 수익을 전액 몰수하는 법의 엄포에도 성매매가 근절됐다는 징후조차 안 보인다. 되레 집창촌이 위축되면서 유사, 변태 성매매 산업이 확산됐고, 성매매 장소도 상가와 주택가로 확산되는 풍선효과는 뚜렷하다. 이뿐 아니다. 10대 또래 내의 성 착취 사건이 속출하고, 리얼돌 체험방 등 법의 사각지대에서 성매매 산업은 첨단을 지향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메타버스가 결합하면 성 산업은 천지개벽할 것이다.

그렇다고 성매매특별법이 표적이었던 집창촌의 불법과 인권유린을 막은 것도 아니다. 지난 4월 한 달에만 파주의 '용주골'에 고향 후배인 장애여성을 팔아넘긴 일당이 법의 심판을 받았고, 수원역 집창촌에서 성매매업소 5곳을 운영해 128억원의 매출을 올린 남매가 적발되기도 했다.

욕망은 더 큰 욕망에 굴복하는 법이다. 전국의 산재한 집창촌들이 지역주민의 개발욕망에 의해 쇠락하고 있다. 개발 요지를 깔고 앉은 집창촌들은 주민들에게 눈엣가시다. 수원역 집창촌이 6월1일부터 폐쇄됐다. 개발 압력과 부진한 영업을 견디다 못한 업소 주인들의 자발적 폐쇄다. 파주, 평택은 물론 부산, 대구 등 전국의 유서(?) 깊은 집창촌들도 같은 운명인 모양이다.

법의 승리도 아니고 성매매 근절도 아니다. 정육점 조명 아래 성매매 여성들이 줄지어 호객하는 구시대 영업의 자진 퇴출에 불과하다. 성매매는 인류 최초의 직업이자 광고 상품이라고 한다. 눈에 보이는 집창촌이 사라졌다고 안도할 일이 아니다. 욕망은 법으로 말살할 수 없다. 시야의 사각에서 번성하는 성매매 시장의 여성 인권유린은 더욱 교묘하고 잔혹해지고 있다.

/윤인수 논설실장